창업에 도전하는 청춘

순천대 앞에 ‘햄버거에 미친 청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송용암(35) 씨를 만나기 위해 에너지버거그릴을 찾아가보았다.

입구에는 ENERGY라고 쓰인 건전지 패티를 넣은 햄버거 로고가 있었다.

송용암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다. 사업에 관심이 있던 용암 씨는 대학에서 물류학을 전공했다. 대학 3학년 어느 날, 『bbq 원칙의 승리』를 읽고 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주 예정으로 서울에 갔다. 그리고는 일주동안 매일, 만나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편지에 연락처를 남겨서 가락동에 있는 bbq사옥에 전했다. 만날 수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관련된 곳을 다니며 이천의 치킨대학에서 소장님을 만나기도 했다.

한 주가 지나 집에 오려고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bbq의 상무이사였다. 발길을 돌려 만났다. “너 같은 친구들이 가끔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저돌적인 경우는 처음이다. 기회가 되면 볼 수도 있을 터이니 열심히 공부해라.”라며 응원을 받았다. 그리고 집에 내려왔는데, 며칠 뒤 연락이 와서 “이력서를 보낼 테니 접수하라.”고 했다. 

당시 tv에서 하는 공개취업프로그램에서 bbq편을 하고 있었는데 송용암 씨도 그 프로그램의 21번째 출연자가 되었다. 용암 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결국 회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특채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년 반 만에 사직서를 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욕만 앞섰던 것 같아요.”
 

▲ 송용암 씨가 주문받은 햄버거를 확인하고 있다.

용암 씨는 우선 졸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천으로 내려왔다. 졸업 후엔 순천시거점산지유통센터에 취업해서 5년 동안 농산물 유통 관련 일을 했다.

30세가 된 어느 날 우연히 고등학교시절 쓴 일기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햄버거 외식업을 갈망하는 18세 용암 씨의 꿈이 있었다. 취미삼아 외식사업계획서를 써보던 용암 씨는 사직서를 썼다. 그런데 5년 동안 나름의 안정을 털어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첫 직장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나를 더 채워야 한다.’는 패기어린 사직서와는 다른 것이었다. 많이 망설였다. 어머니도 안타까워 하셨다.

퇴직 후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1년간 더부살이를 했다. 4개월은 버거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제버거를 맛보러 다녔다. 그러다가 이태원 경리단길의 수제버거 매장으로 옮겨서 일했다. 마침 점장이 순천분이어서 도움이 많았다.

2015년 1월에 순천으로 내려왔다. 이때가 용암 씨만의 수제버거를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28만 인구에서 내가 원하는 햄버거를 내가 원하는 가격대로 팔았을 때 과연 몇 개나 나갈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무턱대고 매장을 여는 것에 겁이 났어요. 소비자 반응을 보고 싶었어요.”

아껴둔 퇴직금으로 노점을 시작했다. 그런데 후줄근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두 달 하다가 까먹을지라도 홍보비라 생각하고 멋있게 하고 싶었다.

연향동 조은프라자 부근에 주변 상인들의 용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회사에서 3년간 같이 일하던 후배와 함께 시작했다. 약 1년 반 동안 신나게 했는데 주변의 민원이 생겨서 그대로 접었다.
 

▲ 에너지버거

새로운 모색을 하던 중 청춘창고 모집에 접수했다. 2017년 2월 8일 청춘창고 1기로 에너지버거를 다시 시작했다. 여기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면 독립해야 하는데 조금 일찍 해보자고 생각했다. 작년 9월 지금 자리에 매장을 열었다. 지금도 청춘창고 역시 계속하고 있다. 노점시절부터 같이 하던 동료 외에 이제는 막내 동료까지 셋이서 운영하고 있다.

“두개매장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주중엔 순천대 매장으로 주말이나 방학에는 청춘창고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요. 창업인큐베이터로서 청춘창고를 잘 활용했어요, 좋은 졸업생으로 독립하는 것이 제게도 시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완전히 독립했을 때 여기를 기점으로 순천, 여수, 광양, 광주 등에 여러 직영점을 열고 싶어요. 아직 멀었습니다.” 활력도 넘치지만 욕심도 많은 용암 씨다. “저만 있으면 괜찮은데 식구들이 있어요. 식구는 집사람과 아기 외에 사업을 같이 하는 동생들이죠.”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이 대단하다.

그런데 용암 씨 노력이 덜하지 않았는데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초기자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청춘창고나 지금 매장을 열던 당시 모든 비용을 다 털고 동료의 몫까지 나누고 나니 용암 씨가 가져갈 것이 전혀 없었다. 동생들에게 전가하거나 나눌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좋은 동료가 있어야 해요. 제가 목표한 부분을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용암 씨는 부인에게 고마워했다. “감사하다. 아무것도 믿고 의지할 것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개업하던 때는 집사람이 일을 해서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5개월 된 아기가 있거든요.” 딸 바보인 듯 아기란 말에 책임감으로 긴장했던 표정이 한순간 펴졌다.

용암 씨에게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보였다. “순천은 광역시나 수도권같이 인구가 많은 곳에 비해 더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경쟁이 적다는 장점이 있어요.”

“이익이 중요하겠지만 지역발전과 공유되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어요. 장사 잘되는 집은 기본 10년의 업력이 있어요. 그것은 그만큼의 내공으로 살아남는 이유가 있고, 필살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갖는 데 5~10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손익분기점을 따지기 전에 업력을 5년 이상 가져갈 수 있는 필살기를 갖추는데 마음을 쓰려합니다.”
용암 씨는 벌써 사장님, 아니 회장님의 마음을 갖춘 듯 보였다.

용암 씨만의 에너지버거가 태어난 과정이 궁금했다.
“나만의 햄버거를 만들 때 어떤 빵, 패티, 소스, 채소를 써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우선 냉동육이 아니라 생고기를 쓰자, 그래서 유통기간이 1.5일입니다. 한편 저는 순천 사람이며, 순천에서 장사를 할 것이라, 순천이란 특성을 살리고 홍보할 수 있는 것을 찾았는데 그것이 매실이었어요.” 용암 씨는 집에서 키우는 매실을 직접 수확해서 매실액을 담그고 이것을 재료로 매실소스를 만든다. 그런데 매실버거가 아니라 에너지버거다.

“내가 햄버거를 팔 것이냐, 햄버거 그 이상의 가치를 팔 것이냐. 앞으로 10년, 20년, 그 이상 햄버거를 팔면서 물적인 것만 파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기존의 기업들도 물적인 것 이상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햄버거를 정크푸드라고 하는데 나쁜 재료를 쓰니까 정크푸드지, 좋은 재료를 쓰면 영양면에서 괜찮은, 오히려 좋은 음식입니다. 든든한 끼니가 되고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음식 중에 왜 햄버거였을까?  
“햄버거를 좋아했어요. 로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외국 영화에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넥타이 매고  일하면서 햄버거 먹는 사람들. 고2 때 일기장에도 작은 카트에서 장사하는 그림을 그렸어요.”

18살에 사업을 생각했다면 대체로 큰 매장의 번듯한 사장님을 하고 싶었을 것 같은데 용암 씨는 열심히 일하는 사장님을 꿈꾸었던 것 같다. 게다가 단순이 먹는 것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음식을 꿈꾸었다는 것이 남다르다. 그래서 에너지버거일까? 

용암 씨의 앞날이 힘차게 솟아올라서 가장 단단한 암석이 되는 용암 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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