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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Web 디자이너, 한국음식 싸들고 유럽 산천을 떠돌다[유럽 인생 여행기] 대안 커뮤니티 fcb와의 3년
전은하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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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호] 승인 2018.06.22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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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웹 디자이너였던 전은하 씨는 한국 전통음식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fhc라는 소규모지만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문화공동체의 일원이다. 유럽에 본부가 있는 fhc 행사에서 그가 하는 일은 한국 고유의 발효음식을 소개하는 일이다. 그가 2013년부터 약 3년간 이 단체의 활동에 참가하며 경험한 ‘아름답고 험난했던’ 여행기를 보내왔다. 지금은 고흥지역에서 자신만의 연구소겸 음식점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인생여행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아주 우연한 시작

2012년 화창한 봄날, 싼 임대료와 넓은 공간을 찾기 위해 서울 을지로 한 복판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그곳에서 운명처럼 그와 처음 만났고 함께 프로바이오틱스 음료와 음식으로 마르쉐 등 마켓활동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2013년 1월 연인으로 제주로 함께 이주를 했고 2016년 10월 고흥으로 이주를 한 후 다시 우리는 동지로 남기로 하고 연인으로서의 인연을 끝냈다. 

을지로 사거리 건널목 앞에서 밝게 빛나던 그는 스님 같은 튜닉 복장을 한 사람이었다. 미생물을 전공했고 10년에 걸쳐 전 세계를 여행하며 세계의 발효문화를 연구 중인 사람인데 일본에서 잠시 한국 여행을 왔다가 한국의 발효문화에 끌려 좀 더 시간을 끌다 나에게 발목을 잡힐 뻔한? 체코인 프란티섹이었다.
 

그는 foodhackingbase 라는 소규모지만 전 세계적인 그룹을 만들었다. 그 상위에는 hackerspace라는 대안적인 커뮤니티가 있다. 해커스페이스는 전 세계에 퍼져있으며 그중 내가 주로 참여한 곳은 독일의 ccc(chaos computer club)라 불리는 c-base 행사다. 연말 크리스마스 전후로 여는 대규모 콩그레스다.

여기서 사람들은 묻는다.
“직업이 컴퓨터 쪽이신가 봐요.”
나의 대답은. . 
“아뇨. 아주 오래전 컴퓨터 웹프로그래머란 이름으로 잠시 직업을 갖고 있던 적도 있었지만 제 몸이 컴퓨터를 못 이기더군요. 그래서 포기했죠. 머리도 아프고...저에게 컴퓨터에 관해 묻지 마세요. 어제 일도 깜박거리는데 무슨 프로그램 언어를 이제껏 기억합니까.
네 저는 컴퓨터와 전혀 상관없이 음식으로 이 콩그레스와 캠프에 참여했어요. 그곳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음식과 김치 막걸리 등을 가르치고 이벤트를 열어요. 그걸 위해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이것이 나의 정확한 대답이다.
 

   
▲ 전은하 음식 연구가

발효음식으로 맺어진 fhb와의 인연

프란티섹은 사람 몸에 이로운 유익균을 이용한 프로바이오틱스 음료를 만드는 발효 전문기술자이다. 이제는 프랑스에서 사과를 발효시켜 만드는 정통 cidre(사이더 혹은 시드르) 기술을 익히고 있다. 서양의 발효세계에선 나름 꽤 유명인사인 듯.

우리는 함께 서울의 수수보리 아카데미에서 우리 술 만드는 법을 익혔으며 함께 맥주 만드는 법을 연구했고 된장과 간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음료보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내 주변 텃밭에서 나오는 각종 채소와 계절별 식자재로 예약제 레스토랑을 제주에서 조그맣게 운영했다. 유럽에 가서는 우리 한국음식과 김치와 막걸리로 워크숍을 가졌다.

2013년 겨울. 우리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30C3(위에 말한 독일 특히 베를린을 근거지로 있는 유명 해커스페이스 chaos computer club의 30년째 계속되는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프란티섹의 경우 비록 한국에 있었어도 매년 여름 캠프와 겨울 콩그레스를 꼬박꼬박 참가해왔었지만, 나의 경우는 2013년 30C3가 fhb멤버로서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 삭막하다는 겨울철 유럽행이었다.

돈이 없는 우리로서는 큰 결단이 아닐 수 없었고 특히 외국인인 프란티섹보다 살림을 꾸려가는 내 입장에선 이것저것 이만저만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크라우드소싱으로 여비 마련해 도착한 겨울 유럽

내가 몇 번 유럽을 다녀오고 하다 보니 어떤 이들은 그래도 여유가 있어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겠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다. fhb의 ‘올가(만든 사람)’로서 프란티섹은 늘 행사에 앞서 crowdsourcing 캠페인을 시작한다. 거기서 모아지는 돈으로 이런 행사참여를 진행하게 된다.

우리들을 후원하고 기부하는 분들에게는 그에 맞는 행사 중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예시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당신이 10유로를 기부하게 되면 전은하의 김치를 한 병 가져갈 수 있다는 식이다.
 

   
▲ 콩그레스에 참가한 필자(가운데 앉은 이). 김치 등 발효음식을 소개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 비행기 값의 일부가 충당되며, 한국에서 식재료를 가져가 fhb에서 사용하게 되면 그 실비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내 이벤트의 대부분을 책임질 식자재를 이고지고 가게 된다. 주로 김, 미역, 다시마, 참기름, 들기름, 고추장, 된장, 재래간장, 젓갈, 매실액, 유자청, 누룩 등등이다.

2013년 12월 17일 우리는 늘 그렇듯 저가항공(주로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을 이용해 독일까지 열심히 날아갔다.
 

   
▲ 함부르크의 겨울.


그렇게 독일에 도착해 우리는 뮌헨 외곽 지역에 살고 있는 모리츠로부터 오래된 폭스바겐 밴을 빌려 여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가 그의 여자친구와 휴가를 떠나게 되어 우리는 그의 여동생이 살고 있는 Dachau라는 곳으로 차를 받으러 가야 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한 밤중이었다. 유럽의 겨울밤은 무지 길다. 어찌어찌해서 난 그 역 반대편 기차다리 아래에서 그 무거운 짐들을 지키고 있고 그는 그 여동생과 연락해서 만나 차를 받아오기로 했는데 그게 그리 끔직스런 기억이 될 줄이야....

아홉 시 경부터 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춥고 을씨년스럽던 굴다리 아래의 기다림은 지금 생각해도 고통스럽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 풀밭과 냇물과 숲들이 있었고 인가의 불빛조차 없었고 계속 영화 살인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나마 드문드문 오가던 늦은 귀갓길의 독일인들조차 사라지고...두려움과 걱정과 추위 속에서 몇 시간을 떨던 끝에 그가 나타나 하던 변명은 차가 고장 나서 고쳐오는데 정비소 등이 연휴로 문이 닫혀 자신들도 고생했다는 것. 

지금 생각해도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절대!!!
그렇게 밴을 갖고 우리는 체코의 그의 고향으로 향했다.

한국과 비슷했던 체코의 풍경

   
▲ 체스키크룸로프. 체코

체코의 Kout na Sumave는 조용하고 살기 좋은 시골동네였다. 그의 집은 그의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집인데 아직도 건축 중인 전형적인 유럽식 집이었다. 체코의 첫 느낌은 고전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그의 동네는 독일 국경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야트막한 구릉 위에서 바라보던 노을이 아직도 눈앞에 있는 듯 선하다. 난 일출보다는 노을의 아름다움을 더 좋아한다. 그곳의 색감은 이번 겨울 사하라 사막서 감상하던 노을과 어렸을 때 살았던 한강가의 집에서 보던 노을과는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 석양

체코의 자연은 어딘지 우리나라와 어떤 부분 비슷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산들이 그리 높지는 않고 부드러운 편이였다. 국립공원이었던 슈마바Sumava 및 몇몇 큰 산을 빼고는 부드러운 지형이였다.

체코는 우리의 유럽 여행에 중간 휴식처 같았던 곳이다. 지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우리의 유럽 여행에서 그 곳은 고향같이 푸근하게 우릴 맞아줬고 온화하셨던 그의 어머니께선 늘 맛있고 정성어린 음식들과 레이키Reiki치료로 날 북돋아주셨다. 

아직 젊으신 연세에 느닷없이 올해 4월에 주무시다 돌아가셔서 우리를 놀라게 하셨지만 늘 원하시던 그녀의 죽음의 방식으로 편안하게 돌아가셔서 다행이다 싶다.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한다.

며칠을 그의 고향집에서 편안하게 보낸 후 우리는 드디어 프라하의 연인이 되었다. 프라하 해커스페이스는 브람랩Brmlab이라 불리운다. 미로같은 큰 건물에 들어있고 그 근처에는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으며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해 벚꽃이 성당 주변에 펴있어서 신기했다. 
 

   
▲ 프라하. 연인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 성당 바로 옆에는 편안한 좌식으로 만들어진 찻집이 있었고 세계의 다양한 차를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었다. 사실 체코의 곳곳에는 몇 백가지가 넘는 세계의 차를 소분해서 파는 곳들이 있어서 우리는 여러가지 차들을 싼 가격에 갖고 들어와 우리의 발효음료에 2차 발효를 시켜 마시고 판매했었다. 이제 슬슬 우리나라도 블렌딩 차가 비싼 가격에 선보이기 시작하는 거 같아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프라하 행사장에서 만난 블렌딩 차와 라면

brmlab에서 깜짝 놀랬던 것은 우리나라 신라면이 이 곳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눈을 돌리면 신라면 박스와 컵라면 쓰레기. 별로 라면을 안 좋아하는데도 왜 그리 반갑던지. 

체코는 지정학적으로도 그렇듯 서유럽과 동유럽의 경계점으로 중앙유럽이라 부를 수 있다. 체코인들 표현으로는 유럽의 심장이란다. (실제 지형 모양도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예술의 심장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프라하와 후에 갔던 체스키크룸로프는 도시 자체가 예술품이
고 동화이다.

체코에서 독일로 넘어가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벤트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해커스페이스 이벤트 중 대규모 정기 이벤트인 2013년 겨울 30C3 함부르크 콩그레스, 2015년 ziegeleipark(오래된 벽돌공장을 큰 공원으로 만들었다) 밀덴베르크에서 있었던 여름 캠프, 2017년 겨울 34C3 라이프지히 콩그레스 이렇게 3회 참여했다. 유럽에서 머물렀던 총 기간을 따지자면 1년은 족히 되는 시간들이었다.

나의 유럽 여행은 시간이 갈수록 편안해지고 자연스러워짐을 느끼게 된다. 첫 여행에서 나는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극한’의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말 그대로 extreme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여행이었다. 

12월 끝날 까지 콩그레스를 끝내고 우리는 2월 달까지 2014 foodhackingbase 겨울투어를 통해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해커스페이스를 찾아다니게 된다. 서유럽은 물론 중앙유럽을 거쳐 동유럽까지 투어를 하게 된다. 그 과정이 얼마나 나의 한계를 느끼게 해 주었는지는 이 짧은 에피소드로 이야기해 보고 싶다.

 

   
▲ 스위스 제네바. 중앙의 흰 물체는 분수의 물기둥.


스위스 제네바(아.. 이 곳 블러드 소시지와 롤렉스 등 명품 거리 등등이 떠오른다)에서 이벤트를 마치고 우리는 어마어마한 경사의 눈 쌓인 몽블랑을 넘어(이때 처음 알았다. 나에게 고소공포증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래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태리 북부를 관통해 운전해가고 있을 때다.
 

   
▲ 스위스의 몽블랑. 이 산을 겨울에 차로 넘었다.
   
▲ 스위스의 몽블랑. 이 산을 겨울에 차로 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뮌헨의 모리츠로부터 폭스바겐 밴을 빌려 타고 사람은 간신히 앉을 만큼 많은 짐을 싣고(각종 도구들과 재료들과 발효통 및 재료들과 우리의 짐까지 정말 카시트를 뒤로 재낄 수 없어 직각으로 앉아 다닐 정도였다.) 동유럽 쪽 슬로베니아 헝가리 세르비아 불가리아를 넘어가는 중이었다.

‘극한 여행’fhb 겨울투어

운전 및 교통은 전적으로 프란티섹의 몫이었는데 구글에서 운전시간을 잘못 계산해 준 게 문제였다. 

예상보다 너무나 오래 걸리는 운전시간과 거의 다 떨어진 돈(사실 나는 아주 적은 금액의 유로를 늘 비상금으로 프란티섹 모르게 꿍쳐두긴 했었지만 이는 정말로 비상의 비상금이었다. 없는 셈 치는…)으로 밴에게 밥을 주면 우리는 거의 굶게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이태리를 지나면서 피자나 파스타 한 조각도 사 먹을 수 없다니…나는 속이 상해 입이 팔십 리 밖에 나와 있었고 우리는 딱딱한 빵과 치즈와 와인으로(아…이 셋은 정말 기본이다. 여행의 일상이라고나 할까?) 겨우겨우 끼니를 넘기고 미친 듯이 운전을 해 나가고 있었는데 밤낮없이 운전을 해 가야만 했다.

 

   
▲ 베오그라드의 성당.

네비게이션(이 네비는 우리 FHB의 빅맥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인 마르셀에게서 빌려 장착하고 다녔는데 정말 종종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우리를 당황케 만든 그녀였다.)이 알려주는 대로 열심히 달렸다. 

비와 진눈깨비가 뒤섞여오는 그런 캄캄한 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두 시간을 넘게 달렸건만 불빛도 너무나 멀고 아무것도 없는 공사판 비슷한 곳을 달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끝은 길이 딱 끊겨버리는 황당한 곳이었다.

정말 귀신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그런 곳에서 우리는 차를 돌려 근처 도시를 찾아 해메다 호스텔 비슷한 곳을 찾아냈다. 인터넷(유럽은 인터넷 및 와이파이 환경이 우리나라 같지 않다.)을 겨우겨우 연결해 다시 찻길을 올라타고 그 새벽에 떠나게 됐지만, 너무나 피곤했다.

어느 주차장에서 30분 간 ‘직각의자’에 앉아 눈을 겨우 붙이고 (사실 30분을 넘어 1시간은 잤다) 일어나 다시 떠나는데 어찌나 서러워 눈물이 나는지, 다음 휴게소에서 한국통장에 있는 돈이라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인출기 앞에 섰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번호를 넣으라는 바람에 그나마도 못 찾고 다시 길을 넘어갔다. 그 아침 잊을 수 없는 눈보라를 맞이했다. 사실 그 해 유럽은 이상기온으로 어찌나 포근했던지 알프스 산맥 빼놓고는 눈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방심하던 우리를 강타한 것은 이태리에서 슬로베니아로 넘어가던 고개에서 맞은 눈 폭풍이었다. 그 순간 불평불만 가득했던 나는 생존의 위기 앞에선 이태리 피자건 파스타건 따스한 목욕이건 다 사라짐을 경험했다. 눈앞에 닥친 폭풍을 뚫고 넘어가야만 하는 상황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 비트코인. fhc 행사에서는 이것도 통용된다.

스스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게 해주었던 여행

이처럼 생존과 기본적인 욕구해결이 절실한 상황은 그 후로도 종종 겪게 됐다. 헝가리에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시골지역에서 몸을 숨기고 잠시 텐트를 치고 눈을 붙여야만 했으며, 세르비아 국경에선 그 많은 짐을 다 내려 짐 수색을 당해야만 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선 집시에게 내가 갖고 있던 꽤 많던 돈을 소매치기 당해 말도 안 통하던 그녀에게서(지금도 얼굴이 기억난다) 나의 강력한 눈빛 에너지만으로 돈을 돌려받던 상황. 그러자마자 다시 올라탄 트램에서 티켓 안 끊었다고 (사실 안 끊은 게 아니라 못 끊은 것이다. 영어를 아무도 못하고, 티켓을 끊으려는 우리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기계조차) 검표원과 경찰에 쫓겨 달리기도 못하는데 줄행랑 놓던 기억.(멀리 samsung이라는 단어와 하야트 단어를 향해 무조건 달렸다.)

이에 비해 쓰레기 처리장 옆에서 텐트를 치던 여름캠프는 너무나 낭만적인 거였다. 그리고 잊지 못할 힘든 기억 중 하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레퓨지라고 불리우는 난민들의 국경이동과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구걸하는 난민들과 그들로 인해 시작되는 유럽인들의 열띤 토론들.
 

   
▲ 여름캠프
   
여름캠프

적다보니 고생스럽고 힘든 이야기만 쓴 거 같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누구나 그렇듯 여행의 대부분은 즐거운 시간이 더 크니까 상대적으로 힘든 기억들이 소중한 것 같다.

잠깐 즐거웠던 기억들을 약간만 들춰보자면 유러피언들의 나체 수영이나 크로아티아 해변에서 라면 끓여먹은 이야기, 아름다운 유럽의 성들과 벼룩시장들과 로컬 마켓들. 산에서 들에서 따먹는 베리들과 넘쳐나는 과실들과 맥주와 치즈 그리고 맛난 각 국의 음식들. 그리고 유럽 각국의 독특한 집과 건물에서 머물고 그들과 나누던 마음들. 그 많은 소중한 이야기들을 어찌 다 이 지면에 적을 수 있겠는가…

서로에게 빛이 되게 해주는 여행. 여러분들에게 그 여행을 떠나라 말해주고 싶다. 가슴 속의 빛을 놓지 말고 천천히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게 해주는 여행. 씨줄 날줄처럼 엮어져 보석으로 빛나는 지구의 사람들과 자연에 대해… 그 보석에 대해 이야기하게 해준 이 지면에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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