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장기근속자·단골손님 수두룩
이발소 사양산업화에“후계자 없어 고민”

50여 년 동안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순천시민들의 가정의 안녕을 도모한 봉문이용원 대표 주봉문(63세) 씨를 만나봤다. 주 씨가 운영하는 봉문이용원은 착한가격 모범업소로 2012년 물가 안정 모범업소, 2017년 국가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문재인 대통령상 표창장, 2018년 시민건강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순천시 표창장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주 씨는 광양시 옥룡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13살이 되던 해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광양의 금성이발관에서 도제교육을 받았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가장이 된 것이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20대에 서울로 상경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주 씨는 “철이 없어서 술을 많이 마셨다. 하루는 부산에서 술을 마시다가 서울로 가서 술을 마시는 등 부산과 서울을 왕래하면서 술을 마시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 주봉문 씨가 거동이 힘드신 어르신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다듬고 있다.

40년 동안 이발료 ‘오천원’

주 씨는 “고향이 그리워서 순천으로 내려왔다. 2년 동안 방위를 받고 24살 때부터 순천의 이발관에서 근무를 하다가 아내를 만났다.”며 “아내는 이발관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서 가장 착하고 예쁜 사람이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가장이 된 주 씨는 일천만 원의 빚을 지고 철도운동장 인근에 이발관을 개업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가게를 개업할 만큼 13살 때부터 한길을 걸어온 그는 그동안 배운 사업의 노하우로 경영에 자신이 있었다.

처음 이용원을 개업했을 때 이발료는 오백 원이었다. 그 후 이발료를 오천 원으로 인상하여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발료는 오천 원이다.  주 씨는 오천 원에 커트과 염색, 면도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 노인, 장애인들에게는 삼천 원을 받는다. 그래서 고연령층 고객이 다른 이발관 보다 훨씬 많다.

김선옥(92세) 씨는 40여 년 단골 고객이다. 연향동 부영아파트에 사는 김 씨는 혼자서는 거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손자가 이발할 때 모셔다드리고 이발이 끝나면 모시고 간다. 김 씨는 “이곳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짧게는 20년에서 40년이 다 되어간다. 고객으로 이곳을 이용하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다.”고 돌아가신 분들을 그리워했다.
 

▲ 김선옥(92세. 왼쪽) 씨와, 정운준(81세) 씨가 그동안 이용원을 이용하면서 느꼈던 인생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운준(81세) 씨는 “71년도에 구룡에 있는 이발관에서 봉문이를 처음 봤다. 그때는 봉문이가 일을 배우고 있어서 고객들 머리를 감겨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며 그 후 “이발관을 개업한 것을 알고 지금까지 단골로 이곳에 다닌다.”며 주 씨와의 깊은 인연을 말했다.

일상이 된 하루에 한 끼 식사

봉문이발관은 이용료 오천 원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 매주 수요일은 휴무일이다. 휴무일인 수요일을 이용해 주 씨는 혼자서 교회와 노인정으로 봉사활동을 간다.

10~20여 명의 어르신들의 이발과 염색을 해준다. 주 씨는 “봉사의 즐거움으로 봉사를 나가면 머리 손질이 끝난 어르신들의 단정해진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웃으면서 뒤돌아서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행복해했다.

가장 바쁜 날은 일요일이다. 주 씨는 “요즘 고객들은 잠시라도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 기다려주면 점심도 먹고 집안일을 볼 수 있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오전 7시부터 문을 열면 고객들이 몰려든다. 7명의 직원들이 점식식사 교대를 다 하더라도 주 씨는 점심을 먹을 수가 없다. “13살 때부터 이발관 근무를 하면서 습관적으로 바쁜 날이면 아침과 점심을 거르게 되었다.”며 요즘도 하루에 한 끼로 식사를 한다. “오래된 습관으로 가게 문을 닫는 8시 이후에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발이 끝난 고객의 염색과 면도를 하고 있는 여직원들의 분주한 손길.
▲ 20년 이상 근무한 남직원들이 고객의 머리를 손실하고 있다. 

착한가게 유지 비법

철도운동장 인근에서 18년 동안 이용원을 하다가 연향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지만 “건물을 매입해서 가게를 운영하면 건물주라는 생각으로 배가 불러서 이발관 운영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임대로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주 씨는 “늘 신중하게 고민을 하고 일을 처리한다.”고 했다. 이러한 주 씨의 판단으로 순천시에 입소문이 나서 착한가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주 씨는 “고객이 많으면 재밌다. 머리를 어떻게 해달라고 물어보지 않고 내가 해주는 대로 만족해하는 고객을 만나면 즐겁다.”고 했다. 공인중개사 서병옥(58세) 씨는 25년 단골이다.

“15,000원을 받는 이발소도 이용해봤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대기 시간이 거의 없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곳은 8명의 직원이 근무하기 때문에 빨리 머리를 깎아준다. “이발관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로 다른 곳을 이용하면 4시간 걸릴 걸 여기에 오면 30분이면 이발, 면도, 염색을 해준다.”고 만족해했다.

주 씨는 이발관을 경영하면서 고민이 많다. 직원을 구하려고 정보지에 구직 광고를 해도 일을 하려고 이발관에 연락하는 사람이 없다. 주 씨는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꼼꼼하게 가르치고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려고 지도한다.” 그래서 이곳에 입사하는 직원들은 20~30여 년 동안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주 씨는 “이발관을 책임지고 맡길 전수자가 아직 없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걱정했다.

주 씨가 기술을 배우던 시절에는 “혼자서 고객의 이발을 다 할 줄 알아야만 정상적인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한 달 정도 근무하면 월급을 그대로 다 준다.”며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일을 잘하든 못하든 똑같이 급여를 준다.”고 했다.

주 씨는 “우리 직원들이 오래 근무하는 이유는 자랑이 아니라 하루 기본 경비를 제외하고는 다 같이 그날 이익금을 똑같이 나눠 가진다.”고 했다. 8명이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힘들게 일한 보람으로 그날 번 돈을 함께 나눠서 가져간다. 그것은 면도와 염색을 하는 여직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50여 년간 이용원에서 일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으로 “최선을 다해서 잘해드려도 불만을 가지는 고객이 있다.”며 “요즘 세상살이가 더 힘들어져서 그런 것 같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서 “직원들과 주 씨에게 화를 내고 가는 고객도 간혹 있다.”며 “그럴 때는 힘이 빠진다.”고 했다.

주 씨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나는 가족 간에 불화가 없고, 남에게 줄 돈 없이 살고 싶다. 40대부터 남의 빚 보증을 많이 서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 빚을 거의 다 갚아가고 있다.” 주 씨의 아내는 “젊었을 때는 고생을 했지만 남 주기 좋아하는 남편이 동생들의 집을 마련해줄 만큼 따뜻한 사람이다.”며 "다시 태어나도 주봉문 씨를 남편으로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주 씨는 “꿈이 있다면 대형목욕탕을 짓고 싶다.”며 유료와 무료로 운영하면서 힘든 사람들에게
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발, 염색, 면도 또한 자유롭게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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