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무에게

▲ 문수현 
    순천여고 교사

예감은 언제나 현실보다 먼저 온다. 우리 사이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징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돌이켜보면 쑥스러움을 감추며 눈빛을 교환하던 첫 만남 때에 이미 이별은 배태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멸은 우주만물의 원초적 숙명이기도 하고. 그러나 우리의 이별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임을 확인하는 지금,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어느 새 중년이 되어 열정이 사그라지고 “다시는 꿈꾸지 않을 거라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되는 거라고” 일상을 버티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그대를 만나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싱그러웠다. “울거나 외면하지 말고 더디더라도 서로를 보듬어가면서” 소박한 사랑과 평화를 하나씩 쌓아 가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우리는 마침내 신록이 눈부신 그해 4월, 월세 30만 원짜리 방을 얻어 살림을 차렸다. 가난하고 초라했지만 우리들만의 공간에서, 우리들이 바라는 삶을 꿈꿀 수 있어 얼마나 뿌듯했는지. 이웃끼리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자연을 건강하게 가꾸며 당당한 시민이 되리라 다짐했다. “아이들이 농사를 꿈꿀 수 있는 세상, 똑똑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많은 세상, 가난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세상, 전쟁 걱정 없이 평화로운 통일 세상”을 꿈꾸었다. 무엇보다 ‘자식 잃은 부모를 위로할 줄 아는 세상’을 소망하며 열심히 살았다.

막상 살림을 해보니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돌발하곤 했다. 그대와 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다투기도 했고, 우리 집에 발길을 끊는 친지도 생겼다. 헤어짐의 원인이야 중층적이고 복합적이지만, 무엇보다 돈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해마다 시댁과 친정에 손을 벌렸고, 가까운 친척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어 근근이 배고픔을 면했다. 쌀과 반찬 수를 줄이고 전기, 수돗물을 아끼며 허리띠를 졸라매 보았으나, 이제 하루에 한 끼 먹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 함께 굶어죽기보다는 서로 헤어져 상대방을 그리워함이 낫습니다. ……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에도 명이 따르는 것이지요. 바라건대 이제 헤어집시다.” 신라 조신(調信)의 아내가 굶주림에 지쳐 남편에게 한 말이 지금 우리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마음이 매우 좋지 않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애써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하면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게 세상사 아닌가. 우리가 조건을 갖추어 혼인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다만 사랑했고, 그래서 살림을 차렸고, 궁핍했지만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다. 힘들었지만 후회 없는 생활이었다. 꼭 만남은 기쁨이고 이별은 슬픔인 것도 아니다. 만물은 다만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그것이 다하면 흩어지는, 찰나의 현상일 뿐.

그대의 말처럼 ‘가볍게’가 답인 것 같다. 하나의 일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면 제풀에 꼬꾸라지고 말기 때문에 무겁지 않게 이 시간을 견디고, 가볍게 이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사랑은 식지 않았고,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의 혼인은 끝났지만 결코 실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간 작고 어쭙잖지만 마디 하나를 만들었으므로, 이제 또 다른 매듭 하나를 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서면 된다. 그러니 동무여, 우리의 이별이 서럽긴 하지만 비관하지는 말기로 하자. 개벽 이래 한 시도 멈춘 적 없는 저 파도처럼.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