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이 땅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불과 정부는 몇 달 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번째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높였다고 ‘자화자찬’을 하였다. 많은 노동자들이 환호하였다. 그런데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이번엔 국회가 최저임금을 낮추는 개악안을 통과시키며 판을 뒤집었다. 참석한 국회의원 198명 가운데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으로 최저임금법 개악안은 너무 쉽게 통과되었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바른 미래당의 주도로 표결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번 국회에서 통과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었다. 2019년부터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상여금과 최저임금의 7%을 초과하는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매년 산입비율을 점차적으로 늘려 2024년에는 전액 최저임금에 산입시킨다. 필요하다면 노동자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쳐 상여금을 월단위로 나눌 수도 있다. 노동자 임금체계 개편의 경우 노동자 50% 이상의 동의를 얻거나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의 조항도 힘을 잃게 되었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개정을 막아주는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한민국을 ‘노동존중’사회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였다. 2024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이상 늘리겠다고 했고, 취임 직후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 사태  앞에서 과연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현재 전주 시청 앞에는 택시노동자 김재주씨가 270일이 넘게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서울 목동의 열병합 발전소 75미터 굴뚝 위에서는 파인텍의 노동자 홍기탁, 박준호씨가 200일이 넘게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경영의 책임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인원 감축의 첫 대상은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실 경영의 책임을 왜 노동자에게 전가하는가? 구미의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 울산 과학대 청소노동자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아직도 굴뚝을 집 삼아, 전광판을 집 삼아, 길거리 천막을 집 삼아 하루를 버티고 있다.

노동자 곁에서 변론하던 인권 변호사는 어디로 갔는가?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던 공약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박근혜에서 문재인으로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노동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앞장 선 ‘촛불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노동자들의 처지는 변한 것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기회가 아직은 남아있다. 최저임금법 개악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라. 최저임금이 16.4% 올라 기뻐하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기억하라.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니 세상이 바뀐 것 같다고 했던 노동자를 기억하라. 미래 사회가 힘들지만 변할 것 같다고 기대를 했던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라.

최저임금은 ‘줬다가 빼앗는’ 도토리가 아니다. 이 세상을 움직이지만 소외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일, 첫 출발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정한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으로 그늘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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