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근혜
더드림실버타운 대표

흔히들 사회복지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보람을 먹고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복지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헌신, 봉사, 희생 등에 많은 의미를 두는 게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초심을 잃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가끔 있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회의 한 축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주로 물의를 일으켜 분노의 대상이 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보도를 많이 하므로 종종 편견에 부딪히는 일이 있다. 얼마 전 편견으로 인한 오해가 생겨 어려움을 겪었다.

육체적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하신데 치매가 심한 용희 님(가명, 92세)이 입소하신 지 한 달 만에 손목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입소 초기부터 쉬지 않고 배회를 하시며 창문과 문만 보면 나가겠다고 머리를 쿵쿵 찧어대시는 통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고 밤에는 더욱 증상이 심해져서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살펴야 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엄마나 선생님이 옆에 있어도 다치듯이 어르신들도 잠깐 사이에 다치는 일이 있다. 

비슷한 인지수준을 보이는 용희 님과 이숙 님(가명, 88세)이 서로 소파에 앉겠다고 실랑이를 하다 두 분이 함께 넘어졌는데 용희 님이 팔을 짚으며 아픔을 호소하셨다. 

다음날 팔이 아프다고는 하셨지만, 손을 계속 쓰시고 부기도 없어 보호자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그 후로 4일 정도 지나는 동안 약간의 근육통만 호소하셨기 때문에 손을 많이 쓰지 않도록 부목을 대서 붕대로 감아드리고 맛사지를 해드렸는데 주말에 보호자가 다녀가자 용희 님에게 심한 배회 현상이 나타났다. 다음날 보니 전과 다르게 손목이 퉁퉁 부어오르고 색깔도 푸른빛을 띠어 보호자에게 상의 후 병원으로 향했다. 사진을 찍어보니 손목 골절이 확인되어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용희 님과 함께 생활하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골절의 원인이 이숙 님과 넘어진 것보다는 따님이 다녀간 날 심한 배회를 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였지만 보호자의 입장은 달랐다. 시설에서 잘못을 은폐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의심부터 했다. 

처음 넘어졌을 때 바로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은 것부터 문제를 삼고 모든 책임이 시설에 있으니 보험처리뿐 아니라 수술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비용까지도 시설에서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일단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절차에 따라 처리해 가고 있는데 연락을 주로 하는 주보호자 외에 경기도에 사는 다른 형제가 함께 넘어진 이숙 님을 경찰서에 폭행으로 고소해버렸다. 

밤 9시가 넘는 시간에 경찰이 시설로 와서 조사하고 CCTV 자료를 요구했다. 요구대로 용희님과 이숙님이 넘어지는 장면을 경찰에 제출했지만, 우리를 믿어주지 않는 보호자에 대한 서운함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사고 이후 모든 영상을 살피기 시작했고, 보호자가 다녀간 날 영상에서 용희님이 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모습과 혼자서 배회하다가 본인이 늘어놓은 물건을 헛디뎌 혼자 넘어지는 장면을 찾아냈다. 

경찰에서 조서를 쓰면서 다시 CCTV 자료를 제출하고 용희님과 이숙님이 두 분 다 심한 치매라는 정신과 의사의 확인서와 장기요양등급 인정서를 제출했다.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자에게 형사책임을 인정하기 어려워 사건을 종료한다는 경찰의 문자를 끝으로 사건은 일단락됐고 보호자들도 본인들의 편견과 오해를 미안해하며 다시 용희님을 시설에서 돌봐줄 것을 부탁하셨다.

용희님은 퇴원을 해서 시설로 오셨다. 보호자들의 오해와 억측으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었지만 하얀 틀니를 드러내며 웃는 용희님을 보니 속도 없이 사랑스럽다. 

내게 주어진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아마도 내내 그럴 것이다. 치매로, 불편한 몸 때문에 가족을 떠나 내 곁으로 오신 그분들은 계속 그렇게 사랑스러울 것이다.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가족들에게 전해지고 신뢰가 쌓이면 그 사랑이 흐를 것이다. 

보람을 먹고사는 일을 택했으니 그 외에는 욕심내지 않아야 함을 이번 일을 통해서 깨닫는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용희님이 하루빨리 좋아져서 “밥 줘, 배고파”하며 소리치실 날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