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실습생이 숨졌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고등학생들의 현장실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그러나 사망 사고의 위험뿐 아니라 실습현장에는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 학생시절 실습현장을 경험한 공업고등학교 토목학과 졸업생 4인을 만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그들은 김영근(19세)·박시형(19세)·신민승(18세)·장성호(19세) 군이다. 작년 8월 1일부터 경기도에 있는 모 건설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그곳은 취업담당 선생님에게 2년 선배들이 후배 실습생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곳이다.

처음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김 군, 박 군, 신 군은 도로 현장 시설물 관리 및 도로 보도블럭 공사를 담당했다. 주로 도로 측량 업무와 현장 인부들과 함께 콘크리트 레미콘 타설 작업을 했다. 장 군은 같은 회사이지만 3명의 친구들과 다른 현장에서 근무했다. 그래서 친구들과는 식사 시간에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장 군은 하수처리 현장에서 일했다. 측량 업무와 관로 공사현장에서 땅을 파고 두꺼운 플라스틱관을 하수구에 묻는 일을 했다.
 

▲ 고장난 농기계를 수리하고 있는 박시형 군


실습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김 군과 신 군은 한 달에 2~3번 회식을 했다. 5시에 현장 장비를 철수하고 주변 정리를 하고 난 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삼겹살과 함께 술도 마셨다. 학교 선배들은 우리를 챙겨줬다. 노래방과 게임방을 데리고 다니면서 좋은 이야기도 해줬다.”

박 군은 “친구들과 함께 도로공사 일을 하면서 장비도 타고 수다도 떨면서 보낸 시간이 즐거웠다”고 했다.

장 군은 하수처리 현장의 특성상 “하수구의 냄새도 심하지만 무더운 폭염 날씨와 땅이 꽁꽁 얼었던 겨울 날씨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사무실에 깜박하고 장갑을 놓고 작업장으로 갔다. 급하게 현장 일을 하면서 눈물이 날 만큼 손이 시렸지만 그냥 일했다”며 지금도 그날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공사 담당 반장의 폭언
박 군은 “근로조건과 노동시간도 힘들었지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은 반장님의 참을 수 없는 심한 욕설이었다” 김 군 또한 “현장 담당 반장은 술을 마시고 숙소로 와서 크게 소리 지르고 욕설을 했다”고 한다. 아직 미성년자인 실습생들은 힘든 시간을 견뎠다.

실습생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현장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반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반장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버럭 화를 냈다’고 했다. 원활하게 일이 진행되지 않는 공사현장의 모든 스트레스를 아무 힘도 없는 실습생들에게 푼 것이다.
 

▲ 7시까지 야간 작업을 할 때는 도면을 보면서 일정을 조정하거나 공사 현장에서 야간 등을 켜고 일을 했다.

토목과 졸업생 4인의 진로
김 군은 무더운 날씨와 힘든 현장 여건으로 작년 11월 순천으로 내려왔다. 현재 광양에 있는 모 건설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현장도 경기도의 반장과 같은 현장 담당 때문에 힘든 현장이라고 했다. 8월에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토목 관련이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박 군은 “토목공사현장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작년 10월 현장 일을 접고 순천으로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도 실습했던 도로공사 현장의 일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곳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배운 토목 관련 직장이 아닌 농업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농기계 고치는 회사에서 기계 수리공으로 3개월 전부터 일을 배우고 있다. 현재하는 일이 “적성에 맞다”고 했다. “사장님은 내가 실수를 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무슨 일을 잘못했는지 지적해 주고 잘 설명해 주신다” 선임 직원들은 “그래도 네가 지금 실수를 하는 것이 나중에 기계를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다독여 준다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 농업인으로 진로를 결정한 박시형 군이 고장난 농기계를 수리하고 있다.
▲ 5월부터 6월 초까지는 농사일이 많을 때라서 농기계 고장도 많다. 그래서 가끔은 9시까지 야간 작업을 할 때도 있다.

박 군의 아버지는 외서면에서 벼농사와 딸기 모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박 군은 농업의 필수인 농기계 고치는 일을 배우고 싶어 했다. “아버지에게 농사일을 물려받아서 농사도 지으면서 농기계 수리점을 함께 운영하는 농업인으로 살고 싶다”고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신을 말했다.

신 군은 실습 나간 모 건설회사에서 일주일 전까지 근무했다. 12월 입대를 앞두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제대하면 다시 토목 관련 회사에 근무할 계획이라고 했다.

장 군은 실습 나간 현장에서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11월에 입대를 앞두고 있다. 현장에서 같이 일했던 2년 선배들은 입대를 했다. 선배들에게 제대 후 다시 이 현장으로 올것인지 물어봤다. 선배들은 ‘그럴 계획은 없다’고 했다. 장 군 또한 제대하면 현재하고 있는 하수처리 현장 일이 아닌 “도로공사나 다른 부분의 토목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현장실습 나갈 후배들에게
사회 초년생이 된 그들은 현장실습을 앞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박 군은
“취업을 나갈 때는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고 나가야 한다. 선생님의 권유로 무조건 취업을 나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 군은 “대학에 가는 것이 현장실습을 가는 것보다 낫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서 경제적인 여건이 된다면 대학에 가길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신 군 또한 김 군과 같은 생각이다. 신 군은 “후배들에게 그냥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꼭 공업고등학교와 연계된 학과가 아니더라도 후배들에게 대학에 가는 것이 바로 현장에서 취업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했다. 승진할 때도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을 나온 직원들의 급여 조건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장 군은 현장실습을 통해서 얻은 경험담을 말했다. “현장에서는 거친 말과 욕설이 오가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빨리 알아먹어야 한다. 한마디로 눈치가 빨라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면서 전라도에서 왔다고 무시하거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일은 없었다. 하지만 장비와 소음이 큰 기계를 다루는 등 위험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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