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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의 미의식
김계수 조합원  |  dal-nam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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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호] 승인 2018.05.03  16: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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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는 여전히 농촌지역이 도시지역 보다 압도적으로 넓다. 도시문제와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서면에서 17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계수 조합원이 농촌의 일상을 전하는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주>
   
▲ 김계수 조합원


올해는 봄을 대표하는 꽃들이 제 차례를 잃어버리고 한꺼번에 피어올랐다. 매화와 동백꽃이 피는가 싶더니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서로 뒤질세라 꽃망울을 터뜨렸다. 도심 아파트 정원에는 5월에나 한창일 라일락꽃이 벌써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고, 온 산천에 울긋불긋한 철쭉이 눈을 어지럽게 한다. 산자락에는 산벚꽃이 만개해 시절이 아직은 봄이라는 것을 애써 보여주고 있다.

남녘에서는 2월말이나 3월 초에 매화와 동백이 피기 시작하고 뒤이어 한 주일 정도씩 시차를 두고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이 핀 후 4월 초에 벚꽃과 배꽃이 흐드러지면서, 꽃들의 향연 속에 봄날이 꿈결처럼 지나갔었다. 하지만 올 봄에는 3월 말의 낮 기온이 초여름을 방불케 하면서도 밤에는 찬 서리가 내리니 생명들이 제 자리를 찾기 어려운 모양이다. 시절이 이렇듯 수상한 덕분에 봄꽃을 탐하는 상춘객들에게는 봄나들이의 가성비가 올봄만한 적이 일찍이 없었을 듯하다.

봄나들이 하는 도시민들에게는 온갖 봄꽃들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어 좋았겠지만 농사꾼들의 눈에 올봄은 여전히 아름다우면서 또한 불온하기 짝이 없다. 불순한 날씨 속에서 올해 농사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감하는 탓이다. 어느 꼼꼼한 농사꾼은 올해 벚꽃이 평년에 비해 한 주 정도 일찍 피었다고 말한다. 온갖 봄꽃을 피어나게 했던 변덕스런 날씨는 4월 초에 눈과 된서리를 내려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감자 싹을 모조리 태워버렸다(농사꾼들의 말로는 ‘꼬실라부렀다’다). 농사꾼은 자연의 변화가 이루는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없다.

도시민은 자연을 자신과 관계없는 객관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삶과의 연관성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자연의 아름다움은 감상과 향유, 곧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인간과 자연은 절연되었다. 자연이 소비재가 될 때 소비자는 보다 많고 다양하면서 고품질로 평가된 재화를 선호하게 되고, 국내를 넘어 해외여행이 붐을 일으키는 것은 필연이다.

반면에 농사꾼은 숙명적으로 자연의 변화를 농사일과의 연관성 속에서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것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벼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는 나많은 이들의 이야기는 농사꾼의 이러한 미의식을 소박한 모습으로 들려준다. 나이 60을 바라보는 데도 여지껏 내 이름으로 된 여권을 만들어보지 못한 것은 여행을 하면서 보게 되는 풍경이 모두 내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심드렁한 것들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농사꾼이 삶과 일,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해 말하는 방식은 다분히 반어적이다.『녹색평론』최근호에는 이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인 우네 유타카가 쓴 ‘농본주의가 가져올 아름다운 농촌’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김매기가 힘드네”라고 이웃의 아흔 살 할머니가 말했다면, 그것은 “(그래도) 김매기를 할 수 있으니 참 즐거워”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라는 구절에서 나는 다음 문장으로 눈을 돌리기 어려웠다. 그 동안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것들에 대해 아주 쉬운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동네에는 올해 아흔아홉인 노인이 여전히 농사일을 하고 있다. 그분은 100미터를 걸어가는 데 두어 번은 앉아 쉬면서 ‘아이고 죽겄네’를 연발하신다. 그러나 그 때 그 분의 얼굴은 일과 삶에 대한 기쁨으로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농사꾼의 미의식 속에는 상반되는 양가감정이 스며들어 있다. 농사일을 통해 세상과 결합되고 자신을 실현하고 있다는 만족감 한편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고단함과 그로 인해  육체가 피폐해진 데 대한 회한이 그것이다. ‘죽어야 이 고생이 끝나지’라는 늙은 농부들의 말 속에는 농사일이 안겨주는 기쁨과 더불어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고 버리고 싶지도 않은 감정을 함께 담고 있다. 모든 일이 ‘현대화’돼버린 세상에서 근원적으로 전근대성을 떨치지 못하는 농사일이 품고 있는 삶의 이러한 전체성을 소농으로서 함께 살아가고 싶은, ‘현대’를 살고 있는 딸아이에게 어떻게 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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