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지구상 최고의 상으로 꼽힌다. 매년 말 그 수상자가 결정될 때마다 유수의 외신들과 국내 매체가 앞 다퉈 그 소식을 전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상을 수상한 일이 있다. 2000년 노벨 평화상이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역사적 쾌거’로 여기며 기뻐했다. 한국인이 이 상을 두 번째로 수상한다면 어떨까? 대단한 사건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부수되는 상금만도 2017년 12억 여 원에 상당했다.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대할 것이다. 또 받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말을 듣고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야 하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평화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충심이 느껴지는 말이다.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준 그의 모습에 감탄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왜인가?

전쟁을 치르고, 그 전쟁을 아직도 끝내지 못한 동족 사이에 평화를 가져오는 일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 노력을 칭찬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그 칭찬이 누군가의 질투심을 자극한다면, 해서 행여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면 소탐대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양과 겸손의 말에서 이런 배려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한 사려를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국제정치 질서의 현실에서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분단은 조선 말기 근대화 과정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던 제국주의 시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적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한 것으로부터 분단의 비극은 시작됐다. 일본이 퇴조하는 과정에서 다시 냉엄한 국제정세가 한반도를 분단하고 그 와중에 남북이 전쟁까지 치른 것이다.

분단의 배경에 국제정세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남북한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화해분위기에도 여지없이 국제정치의 논리가 작용한다. 남북대화에 미국, 중국, 일본이 나서 훈수와 조건을 달고 있다.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새삼 과거를 논의하며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대화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만큼이나 평화의 도정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일이다. 평화, 나아가 통일에 이르기 위해 나를 뒤에 두고 대의를 앞에 두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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