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김련희 강연회 방청기

탈북민 김련희 시가 쓴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책 표지.

지난 4월 20일 저녁 7시 순천농협 파마스마켓 5층 대회의실에서 순천시 농민회가 주최한 ‘평양시민 김련희의 이북이야기’라는 통일강연이 열렸다. 강연 후에는 강사가 쓴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라는 책 싸인회도 있었다. 약 백 여명의 청중이었지만 이제껏 들은 어떤  북한 정보와는 결이 다른 여러 가지 생생한 이야기로 인해 눈이 번쩍 뜨였다. 처음 듣는 ‘북맹(北盲)’이라는 단어를 실감하는 진지하고 뜨거운 강의와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한 주 남은 시점에서 한 시민으로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통일을 이루어가야 하는가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2011년 중국 여행 중 브로커에게 속아 이른바 ‘탈북자’가 되어 입국한 이후 줄곧 가족이 있는 고향 평양으로 보내 달라고 애원했지만 당국은 수용하지 않았다. 관련법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녀의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녀를 돕는 모임이 만들어지면서 ‘탈북 예비 및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지난 7년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자유’가 없다는 북한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가난한 탈북자로서 7년의 남한 생활에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답변에 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젖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 남한에서 사는 동안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김련희 씨.

그녀의 강연 중 재미있게 들은 것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첫째는 ‘와이파이 무료’ 사건이다. 한 번은 ‘탈북녀’ 그녀가 커피숍에 들어가 차를 마신 후 찹쌀떡 같은 공짜 파이를 한없이 기다렸지만 주지 않아 ‘또 속았다’ 싶어 크게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웃프다’고 해야 할까?

둘째는 북한 사람들은 자기 집이 몇 평인지 대부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집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결혼 신고를 하고 기다리면 대체로 6개월 이내에 거주지에 배정이 된다는 것이다. 부모를 모시거나 식구가 많으면 더 큰 집을 받게 된단다. 체제가 다르면 상식도 이렇게 다른 것일까?

셋째는 북한에도 특권층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특권층이란 ‘항일투쟁열사 집안’이 1순위이고 ‘상이군인’ 같은 자들이 2순위라고 한다. 진정한 통일을 준비하려면 그 동안 이질화된 우리말 뜻풀이부터 새롭게 해야 할 것 같다.

▲ 이제껏 들은 어떤  북한 정보와는 결이 다른 여러 가지 생생한 이야기로 인해 눈이 번쩍 뜨였다.

넷째는 북한의 학교에서는 ‘객관식’ 시험이라는 것이 없단다. 이는 강사 스스로 고졸 출신의 평범한 주부라고 자기소개를 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논리적인 답변을 술술 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북한에서는 거의 모든 시험이 문답식이고 수업도 토론식이라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수영장 없는 학교는 없다는 말 등 사실 확인이 필요한 이야기도 많았고 그녀가 북한의 모든 상황에 다 정통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좌절하지 않고 개인의 아픔을 분단과 연결하는 깊은 역사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의 삶을 경계인으로 규정하며 북한에 돌아가면 남북 화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아픔은 팔천만 동포의 아픔이다.”는 그녀의 마지막 외침이 꿈만 같던 남북정상 회담이 이루어진 이 밤에도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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