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소방관 라오스 여행기(1)

본지에 안전에 관한 칼럼을 꾸준히 연재하고 있는 김경식 소방관이 여행기를 보내왔다. 히말라야 여행기에 고무되어 용기를 냈다며 기고한 그의 글을 싣는다. 박사 원우회의 여행기를 대표해 집필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소방관의 관점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필자의 시선이 재미있다. 3회로 나누어 연재한다. <편집자 주>

왜 가느냐고 묻지 말자.
세상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책 사기를 지은 사마천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세상 곳곳을 두루두루 살펴볼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시간을 쪼개어 가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먼저 순천대학교 행정학박사 원우회를 소개해본다.

나이는 40대에서 70대까지, 직업은 종교인, 공무원, 정치인, 사업가 등 대학원생이 아니라면 융합될 수 없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원우회원으로 모였다. 우리의 공통점은 딱 하나, 젊은 시절에 못다 한 학구열,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강의는 빠지지 않은 열성을 가졌던 늦깎이 대학원생들이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1~2명의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13번째 행정학박사가 탄생하였고, 3~4명의 박사가 곧 탄생할 예정이다.

원우회원들의 친목이 돈독해진 계기는 10여 년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지방자치학회에 2박 3일로 10명의 원우회원이 참석하였던 일이다. 이후로도 가입한 학회의 논문발표가 있으면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 함께 다니면서 논문준비와 함께 친목을 도모하였다.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원우회원 모두가 서로 끌어주고 밀어 주고 한 것이 지금의 당당한 모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느 시점에 단순한 친목 도모의 여행이 아닌 단 하나의 경험이라도 후일 후배들을 위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의견이 있었고, 조금 더 나아가서 해외여행을 계획하였다. 2016년 가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고, 올해 1월에 다녀온 라오스는 2번째 여행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한말 독립운동가들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셀 수 없을 만큼의 희생이 있었던 곳으로 첫 번째 여행지로 선택되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조선의 독립을 갈망했던 이상설 의사는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강물에 유해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강변 모래톱에 쓸쓸히 유해비만 있었던 모습, 독립운동 초기 자신의 전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쾌척한 최재형 선생의 허름한 생가를 기억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두만강이 바라보이는 항구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독립운동가의 처연했던 모습을 그리며, 다시는 우리에게 암울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첫 번째 여행이었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말 독립운동가들의 새로운 모습을 경험한 것을 토대로 동남아시아 국가 중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가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은 뒤로하고 조금 덜 알려진 라오스를 선택하였다. 우리끼리 친목 도모가 우선이겠지만 그래도 여행에서 하나라도 얻어 와야 하지 않을까? 원우회원들 각자 라오스에 대해서 역사, 기후, 생활환경, 여행조건 등에 대해서 준비를 하였고, 우리가 가서 무엇을 느끼고 올 것인가? 왜 기회의 땅이라고 부르는지 직접 확인해보자는 것이 정답이었다.

원우회 모든 회원이 참석하면 좋겠으나 바쁜 일정에 있는 몇몇 회원을 뒤로하고 13명의 회원이 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여행 인원이 15명이 안되어서 가이드가 따라가지 못하고 현지가이드만 연결해준다는 연락이 왔다. 세상 어느 곳이래도 살지 못할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한편으로는 속이 탄다. 원우회원들 대부분 한두 번 이상의 해외여행 경험이 있던 터라 무시하고 떠난다.

우리네 해외여행 준비물품은 왜 이리 많은지? 하루라도 우리나라 김치를 못 먹으면 병이라도 걸릴 듯이 필수로 싸가지고 가잔다. 거기에 덧붙여서 고추장, 김, 컵라면 등등 아주 살림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우리가 먹어도 되는 것인데. 그래도 어쩔 것인가? 좋은 것이 좋다고. 몽땅 사가지고 캐리어에 퐁당 퐁당 담았다. 필자의 준비물품은 짐작하겠지만 소주와 담배. 그래도 술은 우리 것이 최고라는 것이 경험담.

당일 새벽 4시 팔마체육관에 모여서 준비된 버스로 김해공항으로 출발.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데이터로밍하고, 간단히 해외여행 안전에 대해서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항공권을 받아들고, 체크인 했다. 보통 항공화물은 1인당 20Kg 내외, 백팩은 12Kg내외이니 참고하자. (장거리 여행일때는 30Kg까지도 가능하다. 보안이 강화되어 캐리어에 전자제품은 넣지 못하고 백팩에 액체 100㎖ 넘지 못하니 이 또한 참고해야 한다.)

조금 일찍 들어왔지만 그래도 늦어서 헐레벌떡 오는 것 보다는 좋아서 비좁은 대기실에서라도 담소를 나눈다. 필자는 마나님과 함께 담배 사러 슝(20갑. 1인당 10갑.)
우리나라는 한파. 김해공항이 영하권. 모두 겨울옷을 두둑히 입고 있다. 하지만 5시간 뒤에는 반팔로 다녀야 하는데. 필자는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고 봄옷을 입고 돌아 댕기고.
 

 

라오스 비엔티엔 여행객은 모두 항공기로 탑승하라는 멘트가 울려퍼진다. 콩글리쉬만 아는 나에게도 아주 친숙하게 들려온다. ‘내가 영어를 이렇게 잘했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 다 주섬주섬 일어선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말로 안내를 먼저 한 것이다. 항공기 탑승객의 90%이상이 우리나라 사람들인 것이다. 웃지 못 할 야그

항공기에서 일등석을 제외하고 제일 넓은 좌석이 어딜까요?
항공기 중간 여러 곳에 있는 비상탈출구. 항공권을 받을 때 미리 물어보고 노란 스티커를 붙여주는 좌석이 있는데 이곳이 승무원을 도와서 비상시 문을 개방하는 역할을 하는 곳. 두 다리 쭉 뻗고 가도 되는 특등 좌석(운 좋게도 오며가며 두 번이나 똑같은 좌석에 앉아서 갔음. 내가 소방공무원이라고 누가 귀뜸을 해줬나 할 정도로 운이 좋았다.)

항공기 내에서 비상시 주의사항을 준다. 물론 금연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이야기한다. 산소호흡기 착용하는 부분에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비상시 어린이를 동반한 사람(노약자 포함)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난 뒤에 착용을 시켜준다는 점을 잊지 말자. 당황해서 어린이부터 착용시키다가 본인이 착용을 못하면 둘 다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유럽의 정서가 약간 다를지라도 안전을 생각하는 면에서는 맞는 것이다.

드디어 출발이다. 언제라도 비행기가 굉음을 울리면서 하늘로 떠 오를 때면 기분이 좋다. 잠시 뒤 전자제품을 사용해도 좋다는 신호가 떨어진 것과 동시에 창문에 스마트폰을 대고 연신 사진을 찍어본다. 저 아래 남해와 여수반도가 보인다. 한참을 가다 구름을 한 컷 찍었는데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세상에 다시 없을 나만의 사진을 찍었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남해
▲ 여수 반도

▲ 오른쪽 아래가 눈덮인 한라산 정상, 확대하면 백록담이 보인다.

기내식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어느새 라오스 상공이다. 짐작해 보건데 아래쪽에 보이는 것이 메콩강과 연결된 민물호수(나중에 보니 정확)

 ▲ 메콩강과 연결된 민물호수

드디어 라오스 비엔티엔 공항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현지가이드를 기다리는 중에 한 컷
 

 

역시 부자연스러운 모습들. 왜 증명사진을 찍어야 할까?

이번에 참가한 순천대학교 행정학박사 원우회원과 가족을 소개한다.

(좌측부터 양귀순박사 남편, 뒤에 김영학박사, 박정우박사 부인, 뒤에 김춘태박사, 양귀순박사, 뒤에 김경식박사(필자), 박정우박사, 백형욱박사 부부, 정장엽박사 부부, 김경식박사 부인, 맨 오른쪽 마태운박사(원우회장님))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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