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부쳐

가장 엄숙해야 할 곳에 시끄러운 운동장이라니?

3월 24일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년 추모식에 참가했다. 효창공원은 안중근 의사의 허묘가 마련되어 있고 김구,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된 곳이다. 추모식은 안중근 의사 유언 낭독과 추모사가 이어져 추모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행사장 뒤편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 왔다. 처음엔 집회가 열린 줄 알았는데 계속 이어진 함성 소리에 귀 기울여보니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경기의 응원소리였다. 가장 엄숙해야할 곳에 시끄러운 운동장이라니?

‘효창공원은 현대사의 왜곡과 아픔을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추모사에 이어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님의 말씀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랜 망명생활을 마치고 환국 후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을 효창공원에 조성하고자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이동녕을 비롯해 조성환, 차이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이곳에 안장되었고 김구 선생도 서거 후 이곳에 모셔졌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의 성역이 조성되는 게 마땅치 않았다. 이승만 치하의 친일경찰들은 전국에서 모여드는 참배객들의 발길을 막아섰고 급기야 시민들은 새벽에 몰래 도둑참배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와 시민들의 무수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0년 이승만은 묘역 옆에 효창운동장을 준공했고 이후 요란한 응원소리에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된 효창공원의 상징성과 영예성은 점점 잊혀져갔다. 효창공원에 대한 탄압은 박정희 때에도 이어졌다. 골프장을 지으려다 무산되자 공원 가장 위쪽 명당자리에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을 세우고 놀이터와 운동시설 등을 설치했다.

대대로 전해지는 그들의 광기

왜 그들은 민족의 성지가 될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을 없애려 했을까?
역사에 닮은꼴은 많다. 1982년 전두환은 ‘비둘기 계획’이란 공작명으로 안기부, 보안사 등을 동원해 5・18 망월동 묘역을 이전하고자 했다. 유가족에 대해 치졸한 회유와 협박으로 실제로 26기의 묘가 이장되었다. 무상 급식 중인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5・18 현수막에 경축을 붙였고 대통령이 되어 기념식 날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빼고 방아타령을 넣지 않았던가. 화장실에서 방아타령 소식을 접한 누군가는 누던 똥이 쏙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도 5・18 당시 북한특수부대가 침투했다는 주장에 비하면 귀여운 정도라 하겠다. 2009년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분향소를 철거하던 모습에서도 대대로 전해지는 그들의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날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끊임없이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친일의 계승자들도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고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조성하자.

상반기 개관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안중근 의사 추모식을 마치고 올해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조성 중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았다. 효창공원 바로 옆이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와 이에 부역한 친일파들의 죄상을 고발하는 전시관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는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다. 기록물과 물증을 소홀히 하면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다. 순천에서도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해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다. 국가에서 조성해야 할 박물관을 민간에서 주도하는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시민들의 성금으로 한 층 한 층 채워져 가는 박물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의 민족애를 다시금 깨닫는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는 지속적으로 지역의 친일·항일 유적지를 돌아볼 계획이다. 우리지역은 식민지배에 여순사건이 더해져 근현대사의 페이지가 더 두껍고 무겁다. 이제는 보다 체계적으로 묵은 자료와 기록들을 모아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담을 우리지역의 근현대사 박물관을 그려본다.

임승관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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