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에는 벚꽃이 피었다.

예년보다 며칠 일찍 피어난 벚꽃은 자신을 주제로 예정된 축제가 열리기도 전에 절정을 지나고 있다. 다른 해 보다도 유난히 추웠던 겨울은 어느새 벽장 속으로 들어가 버린 두꺼운 외투와 함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한낮의 기온은 때때로 초여름을 방불케 하기도 한다.
이런 계절의 변화만큼 정치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지방선거일이 어느새 두 달 남짓 앞으로 닥쳐왔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출마자들이 선거사무소를 열거나 출마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풍덕동에서 조례동에 이르는 신도심의 대로변에는 도지사 예비후보와 시장 예비후보, 교육감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소가 들어서고 있다. 그 건물 밖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들이 선거철임을 실감하게 한다.

예비후보자들은 사무소 개소식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고 유명인사들이 찾아주도록 노력한다. 민주당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놓기를 좋아한다. 꾸준히 두세 가지의 정책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내놓는 예비후보들도 있다. 모두 자신들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감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렵지만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에 도전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어쩌면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도 감수하는 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바보 노무현’이 이를 증명해 보인 바 있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에서 열린 4·3사건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했다. 4·3사건은 일제강점 상태에서 막 벗어난 전환기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그 사건의 한 가운데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오래동안 추념은커녕 사건자체를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조차 터부시돼 왔다.

이 터부를 깨고 현직 대통령이 비극을 추념하는 행사장에서 추념사를 했다는 것은 사건이다. 그는 대통령의 자격으로 사과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맥을 잇는 일로 4·3 사건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움직임은 올 가을 여순사건 70주년을 맞는 순천시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여순사건이 4·3사건의 여파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던 군인들 중 일부가 이에 항명하며 시작됐기 때문이다. 여순사건도 4·3사건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언급이 금기시돼온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이들도 있다.

대통령이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약속한 이때, 이제 여순사건을 직시하고 분명한 진상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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