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준 소설가

지난 3월 20∼21일 사이,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그날은 마침 멀리서 벗이 찾아와 산속 움막에 머물게 되었지요. 아침을 맞아 소나무 숲과 장독대까지, 볼 수 있는 거리 안의 온누리가 허옇게 눈으로 덮인 풍광은 그야말로 황홀경이었습니다. 아침나절 내내, 장독 뚜껑에 소담스레 쌓이는 눈이 참 눈부시다는 새삼스런 느낌과 막 피려는 능수매화의 움을 움츠리게 하고 눈을 잔뜩 짊어진 대나무 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땅에 닿을 듯 휘어진 모습을 산속에서 보았습니다. 드문 호사를 누린 날이었습니다. 

3월 추위가 장독 깬다더니, 막 망울 부푼 산속의 매화 앞에 3월 대설이 웬 일이람, 하는 마음이 치켜들지 않는 건 아니었습니다. 한편으론, 경사 심한 임도의 산길을 아무리 사륜구동 차라 할지언정 내려갈 수 없겠구나, 하는 염려가 솟고라졌습니다. 함에도, 그런들 어떠랴 싶은 심경에 빠져 들었습니다.

마음 들떠 풍경 바라만 볼 수 없었습니다. 벗과 더불어 저의 움막보다 더 깊은 산속에 오래 전부터 터 잡고 사는 지인의 집으로 소주 두어 병 꿰차고 나들이 나섰습니다. 아직은 여물지 않은 봄기운일망정 피어올라 산길이 눈으로 소복하진 않더군요. 벗과 더불어, 전날 마신 술 끌텅이 여직 남았는데도 산속 오두막에서 중천볕 함지 쪽으로 살짝 기우는 즈음까지 술잔 부딪치는 맛이 참 좋았습니다. 낮술로 거나해진 벗과 함께 산길 내려오면서 취흥에 젖어 노래 몇 소절 마다하지 않았지요. 삼월에, 산속의 누항까지 찾아온 벗과 더불어 눈밭에서 때 아닌 즐거움에 빠져든 흔치 않은 흥취였습니다.  

한반도가 맞는 올해의 봄이 참 드문, 때 아닌 봄꿈처럼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봄날 아니고 저런 봄날일지라도 봄에는, 겨우내 세파에 찌들고 한파에 포박당해 가슴 조아렸거늘 숲으로 난 창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맞으며 얼어붙은 가슴 도닥이거나 혹은 봄비에 촉촉해진 표층 위로 올라오는 흙내음 맡으며 봄볕 받아 따스해진 마음으로 옆의 누구에겐들 살며시 미소 건네기도 하거니와 더 하여, 생강나무 꽃과 히어리 피어 있거나 자주색 점 박힌 이파리까지 곱살한 얼레지꽃 핀 어느 산모롱 거닐며 그대로 숲의 그림 한 조각이나마 이룬다면 어찌 그 아니 좋으리요.  

절기로는 청명(4월 5일, 식목일)을 앞둔 봄날입니다. 농가월령가 3월령 한 대목을 보면,

“…봄볕이 따뜻해져 만물이 화창하니
온갖 꽃 피어나고 새 소리 각색이라
집 처마에 쌍 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꽃 사이의 호랑나비는 날개 짓이 바쁘구나
미물도 때를 만나 즐겨함이 사랑흡다

때맞춰 비내려주심 제물 차려 감사드려
농부의 힘 드는 일 가래질이 첫째로다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 나마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라, 읊조립니다. 논농사의 태반이 요즘에는 기계로 이뤄집니다. 논농사만큼은 일손이 많이 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논둑 세우고 다듬는 일은 그나마 손일인지라 농부님들의 몸과 맘을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봄날의 시작이 농사일이겠지요.

이 봄, 한반도를 희망으로 이끌어 갈 뜻밖의 봄날이 기대를 한껏 부풀리며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평창동계올핌픽 이후, 한반도의 봄에 ‘꽃’도 피지 않을 양 어둡던 전운 되알지게 날려버리듯 이 봄, 이 봄날에 꿈만 같이 찾아온 3월의 하얗고 하이얀 서설(瑞雪)처럼 평화의 봄, 통일의 봄날로 부풀어 오르길 갈망함은 여느 뉘만의 소원은 아닐지니… 다시, 봄입니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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