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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굿을 치다
김계수 조합원  |  dal-nam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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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호] 승인 2018.03.22  16: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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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는 여전히 농촌지역이 도시지역 보다 압도적으로 넓다. 도시문제와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서면에서 17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계수 조합원이 농촌의 일상을 전하는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주>
   
▲ 김계수 조합원


설을 쇠고 정월 초이레와 여드레 이틀간 보름굿으로 마당밟이를 했다. 올해는 설이 늦게 들어 대보름 무렵이면 농사일로 바빠질 거라는 걱정에 더해 여기저기서 상쇠로 뛰어야 할 강사 선생님의 바쁜 일정이 겹쳐 날짜를 앞당겨 마당밟이를 하게 되었다. 마당밟이는 음력 정초에 지신을 진압하여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이자 마을공동체의 축제다. 원래는 보름날 새벽에 당산제를 올리고 날이 밝으면 메구꾼이 모여 당산굿을 치고 공동 우물에 가서 시암굿을 친 다음 집집을 돌아다니며 다복을 축원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산제도 끊긴 지 오래고 공동 우물도 없어졌으니 마을 회관이나 주민들 집을 돌아다닐 뿐이다.

첫째 날 아침 흰색 바지저고리에 남색 조끼를 입고 청홍색 띠를 양 어깨에 엇갈리게 걸어 허리 뒤춤에 나비 모양으로 고를 내 묶고 다시 황색 띠를 허리에 둘러 묶는다. 삼색 띠를 묶어 만든 고가 엉덩이 위에 풍성하게 얹히고 그 끝단은 발치까지 내려와 치렁치렁하다. 청홍황백의 네 가지 종이꽃을 얹은 고깔을 쓰고 가죽 미투리를 신고 장구를 둘러메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웃녘에서는 고깔 대신 상모를 많이 써서 굿이 역동적이고 볼거리도 많은데 비해 아랫녘에서는 쇠(꽹과리)잽이만 상모를 돌리고(상모줄도 웃녘보다 짧다) 나머지 패들은 고깔을 써서 외관이 웃녘보다 화려하다.

아침나절 일정은 면사무소와 농협, 우체국, 파출소 등 기관들이다. 기관은 사무실만 달랑 있어 굿이 다채롭지 않고 술도 없이 금일봉에 음료수 한 병씩만 얻어먹고 나온다. 점심때가 되어 면에 둘 밖에 안 남은 식당 중 한 곳을 찾았다. 안주인이 촛불을 꽂고 지전 몇 장을 얹은 쌀 양푼과 막걸리를 한가득 담은 양푼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구색이 갖춰지자 패들은 흥이 돋고 분위기가 오른다. 손님방과 주방을 오가며 액맥이까지 해주고 상쇠가 안주인의 미모를 칭찬하니 상쇠의 상모를 묶어주는 턱끈에 다시 지전이 묶인다. 주인은 점심으로 불낙전골에 밥과 술을 모두 공짜로 냈다.

다음 차례는 최근에 귀촌해서 예쁘게 집을 지은 메구패 회원의 집이다. 마을 입구에서 질굿(길굿)을 치면서 대문 앞에 다다라 ‘문여소 문여소 쥔 쥔 문여소-덩따궁 덩따궁 덩덩 덩따궁’ 문굿을 치자 주인이 나와 맞이한다. 거실 탁자에는 역시 쌀을 가득 담은 양푼에 촛불을 밝히고 숟가락에 실타래를 감아 꽂고 주소와 이름을 쓴 봉투에 돈을 담아 올려놓았다. 상쇠는 그 이름을 들어가며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를 외쳐 복을 청한다. 이어 부엌으로 옮겨 조왕굿을 치고 안방에 들러 부부의 건강과 금슬을 청한다. 마당으로 나와 샘굿을 친 후 장독대로 가서 간장과 된장독의 뚜껑을 열어놓고 좋은 맛이 들기를 기원한다. 옛날 농경사회라면 곳간굿이나 마굿간굿도 마땅히 있었을 것이다. 굿이 막바지에 이르면 술과 음식을 가득 올린 상이 나오고 ‘술먹세 술먹세 어서치고 술먹세-덩따궁 덩따궁 덩덩 덩따궁’으로 굿을 마친다. 나는 이 마지막 가락이 가장 좋다.

다음날 점심은 옆 마을 회관이다. 상쇠인 강사 선생님은 이곳이 외갓동네인지라 회관 마당에서 판굿을 걸판지게 벌인다. 흥이 오르자 회관에 놀러 나온 할머니들이 메구패에 섞여 함께 춤을 춘다. 굿을 치는 중에도 술잔을 들고 와서 권한다. 마을 유지 몇 분이 고사상에 봉투를 내밀고 상쇠의 턱끈에도 지전을 꽂는다. 굿이 끝나자 마당에 멍석을 깔고 주민들과 메구패가 함께 둘러앉아 마을에서 준비한 닭죽을 먹고 술을 나눈다. 그날 나는 술로 떡이 됐고 상쇠의 얼굴은 묶인 지폐들로 반쪽이 됐다.

이틀 동안 잘 놀았다. 그 동안 연습에 들쭉날쭉하던 패들도 바쁜 일을 밀치고 모두 나왔다. 장구 가락에 서툰 이들은 소고패가 되어 신명난 몸짓으로 흥을 돋궜다. 한 마음으로 그 댁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고 주인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아 환대했고 주민과 놀이패가 뒤섞여 어울렸다. 대동 세상을 살짝 엿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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