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철호
변호사
나는 순천시민이 된 지 아직 1년도 안 됐다. 여수하고도 화양면 구석에서 나서 오십이 되도록 살다가, 작년 말에 갑자기 큰 뜻을 품고 여수반도를 벗어나서 사통팔달의 순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오십 평생을 태어난 집에서 실컷 살아봤으니 남은 생은 다른 풍경을 보면서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일 듯싶었다. 이 정도의 두루뭉술한 생각이었으면 쉽게 고향을 떠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사실 그렇게 한 데는 선암사와 송광사에 가기 쉽도록 더 가까이 가겠다는 심산이 작용하였다. 마음이 동하면 언제라도 시내버스 정류소에 나가서 1번과 111번 중 먼저 오는 놈을 잡아타고 조계산의 숲으로 가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송광사의 예불에도 참례를 한다. 

순천은 책이건, 버스 옆구리건, 간판이건 간에,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이라는 로고가 깔려 있다. 그다지 예술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 로고가 말하려는 것인즉, ‘이렇게 잘 다듬어 놓았으니 많이많이 놀러 오셔요’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울 사람들의 돈을 손에 좀 쥘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보다. 그 몇 배의 돈을 서울 유수의 종합병원과 프랜차이즈 본점에 갖다 바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판에,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푼돈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다. 지방경제를 이런 식으로 풀려는 것은 대체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 되고 만다.

여기서 지방 도시들은 서울을 어느 정도는 외국으로 대할 필요성이 있음을 포착해야 한다. 옛날 서울과 지방의 자원 이동은 쌀이나 특산물 등 세금의 형태로만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도에 지나치면 금방 알아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자원이동은 세금 형태보다는, 아주 신사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민이 서울에 갖다 바치는 의료비, 학비, 프랜차이즈 특허료, 대형 할인매장에 지불하는 이윤 같은 것들은 기꺼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세금처럼 강제로 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범위 내에서는 이러한 교환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이 모든 돈을 빨대로 흡수하였다가 다시 적당량을 내뱉어 주는 식이 되었다.

서울이 돈을 흡수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텔레비전의 광고이다. 우리가 텔레비전의 뉴스나 연속극을 공짜로 보고 있다면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값싼 서울식 오락을 제공받는 대신에, 부지불식간에, 어떤 상품정보나 의료정보에 대한 무비판적 흡수하고 있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한쪽으로는 돈이 마구 새어나가는데, 관광객 몇 명 더 유치한다고 해서 나가는 돈을 감당해낼 도리는 없는 것이다.

내가 만약 순천시장이라면, 정원박람회에 들인 돈을 전부 시내 도처에 산책길을 만들고, 어떻게든 한 걸음이라도 더 걷게 해서 시민들이 덜 아프고 살아서 서울에 있는 병원을 덜 찾게 하는 그런 방법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았을 것이다. 또 인근 농촌에서 생산된 것이 되도록 순천시내에서 소비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아랫장, 웃장에 친환경농산물 장터를 개설하여, 아침에 밭을 떠난 채소가 낮이나 저녁쯤엔 도시민의 밥상에 오를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생각하겠다. 고등학교 2학년 이하의 학생들은 오후 4시 이전에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체육시간에는 강제노동을 시키고, 시 예산을 급식에 펑펑 쏟아 부어서 순천아이들은 어디 가서도 기골이 장대하고 눈빛이 살아 있다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번과 111번의 시내버스 요금은 공짜로 하고 선암사, 송광사 입장료를 대폭 낮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조계산 숲에 가서 심신을 단련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무경험자의 순진한 견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허허벌판에 정원이랍시고 인공 숲을 조성해놓은 박람회 사업의 성과를 두고 흡족해 하는 모양인데, 단언컨대 이런 과시성 건설사업보다 내 생각이 백이십 배나 더 훌륭할 것이다. 이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정원박람회는 헛돈을 썼다는 것이 더 명확해짐으로써 서서히 입증될 것이다. 무슨 사업을 하건 우리가 주변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서울특별시의 식민도시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애써서 번 돈을 그 돈이 왔던 곳으로 단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이 식민도시의 특성이다. 폐쇄적으로야 살 수 없는 것이지만, 행정이 앞장서서 돈이 새어나갈 길을 터주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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