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계수 
    달나무농장 대표

갑작스러운 뉴스에 깜짝 놀랐다.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과 점심을 먹는데 티비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한과 미국간에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동안 꾸준히 지속되던 양국 간의 대결 양상들-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이에 대응한 미국의 전쟁 위협과 경제 제재 조치, 양국 지도자들이 상대를 향해 쏟아낸 저급하고도 날선 언어들 속에서 전쟁에 이어 민족이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일상이 되어갔다.

북미 간의 정상회담은 지금과 같은 국제 정세와 주변 강대국간 역학 관계 속에서는 향후 몇 년 안에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미처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하기는 큰 머리 가진 짐승이 무슨 일인들 생각해내지 못 하겠는가. 강고한 대결 구도 속에서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비관주의와 체념을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주어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상상력 같은 것은 아예 고갈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을 남북 대화와 긴장 완화를 위한 디딤돌로 삼고 한반도의 냉전적 대결 상황을 전세계인의 관심사로 부각시키면서 북미 간 접촉의 분위기를 조성할 기회로 활용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 특히 남북 간 그리고 북미 간 정상회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더욱 고무적이다. 동시에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회담을 제안하고 수용한 것 또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선물처럼 다가온 이번 합의들이 과연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정착시키면서 냉전적 대결 구도를 끝내는 세계사적 변혁을 향한 교두보를 놓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낙관적 전망을 전혀 허하지 않는다.

우선 북미 정상회담의 한쪽 당사자인 트럼프는 평화 애호가가 아니다. 오히려 결과 배제·배타성, 힘의 우위를 통한 밀어붙이기 등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 정부의 대북 특사가 남북 간 교섭 결과를 미국과 협의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간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은 그간에 보여줬던 정책 결정 과정의 즉흥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짧은 순간에 기회를 포착하는 사업가적, 동물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미국의 정가에서는 그의 이런 즉흥성과 준비 부족이 회담을 그르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면서 예정된 5월 회담에 대해 비관적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그 결정의 이면에는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와 연계되었다는 의혹과 성 스캔들 등으로 부터 벗어나보려는 의도와 함께 연말에 치러질 중간선거를 유리하게 이끌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트럼프가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외교와 정책 라인을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로 교체한 것,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미국의 군사 기업들과 주류 정치인들로부터 예상되는 반발 등은 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이번에 북한이 정상회담을 제안한 데에는 국제적인 경제 제재의 여파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한편 그들의 발표대로라면 핵무력을 완성함으로써 미국과 대등하게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했을 수 있다. 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무엇을 제안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바라는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는 북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받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또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전쟁 가능 국가로 가고자 하는 일본 극우 정권의 방해 공작도 예상할 수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상황은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보듯 우리가 주체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폭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의 최종적인 목표는 마땅히 한반도에서 ‘불가역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는 길고 지난할 목표를 향해 철저하게 준비하되 자주와 민족 우선의 가치를 굳게 지켜나가야 한다. 만약 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전쟁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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