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아 어스 빌리지

필자는 지난 11월 1일부터 약 2주 간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GEN: Global Eco village Network)의 청년 그룹인 넥스트젠 한국 지부(nextGEN Korea)가 기획한 교육/탐방 여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테마는 구들 놓기 워크샵 + 나는 난로다 + 공동체 탐방 + 맛있게 먹자. 이어서 필리핀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지면에 풀어놓아 보려 한다. <편집자 주>


마이아 어스 빌리지에서는 전기도 태양광 패널로 충당하고 있었다. 배터리 용량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조명은 침침했고, 잦은 비 때문에 배터리가 말썽을 부려서 전기가 나가기 일쑤였다. 전기가 나간 날은 휴대전화 충전도 멀리 다른 건물까지 걸어가서 차례로 돌아가며 해야 했다. 휴대전화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아서 나는 그냥 ‘디지털 다이어트’를 하는 셈 치고 일주일 동안 전화기 전원을 꺼 두었다. 해방감이 들었다. 연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SNS에 매달려 있을 필요도 없다. 온전히 이 곳의 느리고 이완된 분위기에 젖어든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바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별 빛이 쏟아진다.

어둠 속에서
전기가 나간 어느 밤, 우리 일행은 이너 댄스 세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즉석 합주를 벌였다. 둥글게 모여 앉은 가운데에 촛불을 밝혔다. 각자가 보유하고 있던 악기를 몽땅 들고 나왔다. 디저리두, 우쿨렐레, 소금, 아살라토, 젬베, 버드 휘슬, 짤랑거리는 발찌, 샤먼의 방울, 싱잉 보울, 대나무통 안에 곡식을 채워 기울이면 파도 소리가 나는 이름 모를 악기… 악기가 없는 사람은 박수와 구음을 보태고 플라스틱 물통을 북 삼아 두드렸다. 악보도 없고 지휘자도 없는 즉석 합주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두어 시간 동안 이어졌다. 서로의 호흡에 감각의 안테나를 세우고 파장을 맞춰 가며 모두들 음악에 취해 자신을 잊었다. 마술적인 시간이었다.
 

 

전기는 어디에서
우리는 전기 없이는 이제 하루도 살지 못하게 됐다. 지금 이 글도 컴퓨터 자판으로 두들기고 있다. 나는 재작년 즈음부터 ‘전기 중독 사회’의 문제를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편리하게 전기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나에게까지 오는지 잘 보려 하지 않는다. 거대한 전기 공급 체계는 우리 생활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다. 전선은 밀양 송전탑의 눈물을 지나 핵발전소의 원자로까지 뻗어 있다. 핵폐기물은 수십만 년 동안 방사능을 내뿜고, 화력발전소에서 나온 온실가스는 기후변화를 가속시킨다. 우리 세대의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 빚은 후과는 대대로 후손들의 삶을 제약할 것이다. 여기까지 온 데에는 산업계와 국가에 큰 책임이 있지만 그 구조 속에 젖어 살아온 우리 개개인도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촛불의 날
어둠 속에서 촛불을 응시하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충실감을 안겨 준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다. 전기 없는 밤, 촛불의 밤을 시도해 보자. 음악을 즐겨도 좋고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워도 좋고 촛불 앞에서 명상에 잠기거나 기도를 올려도 좋다. 지난 촛불 혁명의 추억을 돌이켜 봐도 좋다. 그러고 보니 촛불은 변화와 희망의 상징이 아닌가?
 

 

거대한 구조 앞에서 무력감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럴 땐 일단 작은 촛불이 주는 충실감을 느껴보자. 어둠이 주는 고요와 포근함을 즐겨 보자. 일상에서 느끼는 이런 경험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처음 몇 번이 어려울 뿐 이내 적응하고 익숙해진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나부터 생활을 바꾸다 보면 결국 벽에 부딛힐 때가 온다. 그 때야말로 거시적 구조까지 문제 삼아 보자. 누가 핵발전 산업을 움켜쥐고 있는지도 알아보자. 계속해서 에너지 전환을 고민해 보자.  ‘거대한 전환’도 개개인의 작은 의식 변화에서 시작한다.

작년 목표 중 하나였으나 해를 넘기고 만 태양광 패널 설치를 다시 올해 목표에 넣어 본다. 작은 용량이라도 좋으니 일단 하나 설치하기로. 촛불과 태양광 패널로 반짝이는 집들이 하나둘 늘어 갈수록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줄여 나가기가 수월해지지 않을까? 마을마다 작은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집집마다 태양광 패널이 빛나고 주방과 거실마다 비전력 손도구들을 즐겨 사용하는 미래를 꿈꿔 본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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