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1월 1일부터 약 2주 간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GEN: Global Eco village Network)의 청년 그룹인 넥스트젠 한국 지부(nextGEN Korea)가 기획한 교육/탐방 여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테마는 구들 놓기 워크샵 + 나는 난로다 + 공동체 탐방 + 맛있게 먹자. 이어서 필리핀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지면에 풀어놓아 보려 한다. <편집자 주>


팔라완
1월 중순에 열흘 정도, 나는 nextGEN(국제 생태마을 네트워크 청년 그룹)이 기획한 일주일 코스의 ‘이너 댄스 Inner dance’ 워크샵에 참가하기 위해서 필리핀 팔라완 섬에 다녀왔다.

팔라완은 필리핀 남서부에 있는 큰 섬으로 태고의 카르스트 지형과 아름다운 해변과 섬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관광객들에게 비싼 환경세를 물리는 등 필리핀 환경청이 보존에 주력하고 있다고는 하나, 지난 수년 사이 해변 지역 땅값이 수십 배 오르는 등 이곳도 개발과 성장의 광풍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현지 주민의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팔라완의 때묻지 않은 자연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이너 댄스
이너 댄스란, 현대 심층심리학의 지식과 고대 샤머니즘의 지혜를 융합시켜 트랜스 상태를 유도해 무의식을 탐색하고, 억압과 트라우마 등을 정화해 의식과 통합하도록 돕는 기법이다. 나는 나 자신의 내밀한 내면적 과제를 안고 이 워크샵에 참가했고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더 자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일단 주제를 벗어나므로 다음에 따로 다룰 기회를 찾아야겠다.


마이아 어스 빌리지
이너 댄스가 진행되는 일주일 간, 넥스트젠 코리아가 모집한 10명 남짓의 한국인 일행은 ‘마이아 어스 빌리지 Maia earth village’에 짐을 풀었다. 이 곳은 이너 댄스를 정립한 ‘파이Pai’라는 필리핀인이 주도해 꾸려진 생태 공동체로, 영성/의식 교육 단체인 바하이 칼리파이 센터Bahay Kalipay center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었다. 실제로 공동생활을 꾸리는 마을이라기보다는 주로 교육과 피정retreat, 생채식을 통한 해독과 심신 정화 등의 역할을 하는 센터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거주자들은 대개 각자의 숙소를 배정받아 몇 달 간 머무르는데, 피정을 하며 심신 정화와 의식 고양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살림을 돌보는 스태프로서도 일하고 있었다. 필리핀인들은 물론, 폴란드, 미국, 독일 등 서구 각국에서 온 거주자들이 각자의 특기(이너 댄스 진행, 자연출산의 조산사, 흙건축 전문가, 태극권과 요가…)를 살려 봉사하고 있었다. 
 
흙건축 워크샵
마을의 건물들은 대부분 흙이나 대나무, 목재를 이용한 생태 건축 방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우리 참가자들은 이너 댄스 세션들 사이의 짬을 이용해 반나절의 짧은 흙집 보수 워크샵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마닐라 출신의 흙건축 전문가 ‘마우이Maui’가 워크샵의 강사였다.

마을 정문 근처의 한 건물의 갈대로 엮은 지붕이 비에 상해서, 빗물에 노출된 벽체의 일부가 무너져 있었다. 그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는 것이 워크샵의 목적이었다.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았는데,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서 누구나 금새 익숙해졌다. 
 

 

마을에서 퍼온 흙과 모래, 주변 농가에서 얻어온 볏짚을 잘게 잘라서 적당한 비율로 섞어서 물로 반죽한다. 따로 긴 볏짚을 굵게 꼬아서 심으로 삼고 거기에 흙반죽을 덧붙인 덩어리를 대나무 살에 엮어 벽체의 모양을 잡는다. 그 구조 위에 다시 흙반죽을 덧발라서 매끄러운 곡선형태로 마무리한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흙반죽을 주무르고, 밟고, 굴리고, 뭉쳤다. 모기들의 공격을 막고자 진흙을 서로의 몸에 발라대고 눈싸움 하듯 작은 진흙덩이들을 던져댔다. 일과 놀이가 어우러졌다. 임노동과 여가가 날카롭게 분리된 산업사회의 비극은, 이런 공동체적 자급 노동 속에서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물과 전기, 불편해서 재미있다
생태 의식 교육에 주력하는 센터답게, 마을의 생활용수는 거의 빗물을 모아서 해결하고 있었다. 도시적 생활방식에 젖은 우리 일행이 일정 초반에 평소 하던 대로 샤워를 해댄 덕분에, 숙소로 배정받은 건물의 탱크에 모아둔 빗물이 금세 동이 났다. 수세식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샤워나 화장실 이용을 위해서는 한참 떨어진 다른 건물까지 걸어가야 했다. 다들 불편함을 호소했고 더운 날씨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어찌어찌 적응해 갔다.

샤워의 빈도를 줄이고, 산책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앞 시냇가에서 멱을 감았다. 평소보다 훨씬 적은 양의 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조금 지저분한(?) 서로의 모습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평소 잊고 살던 물의 소중함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마을의 하나밖에 없는 펌프 시설에서 물을 길어다 설거지를 했는데, 펌프질로 물을 끌어올리고 양 손에 물통을 들고 오르막을 오르는 일은 적당한 운동이 되어 주었고, 펌프에서 서로 등목을 해 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린 시절 장독대에 있었던 펌프에서 사촌들과 등목하며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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