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여자 사우나 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목욕탕이 있다. 그곳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이야기꽃도 피어난다. 덕월동에도 이런 목욕탕이 하나 있다. 같은 건물에 헬스장도 있고, 밸리댄스교습장도 있는 익숙한 동네 ‘스파’다. 그 목욕탕 안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고갈까? 광장신문의 여자 시민기자가 그들의 수다에 함께했다.
<편집자주>

 

5층 헬스장에서 런닝을 즐기는 주부 김 모씨(57세)는 순천으로 이사 온지 2년이 됐다. 김씨는 “공기 좋고 먹거리도 풍성하고 사람도 좋은 곳”이라고 순천으로 이사 온 것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이날 사우나 실에는 14명이 있었다. 김 씨는 여성 사우나 실을 자신들은 ‘누드카페’라고 부른다고 했다. ‘누드카페’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거리낌 없이 아이스커피를 나눠 마시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늘은 김씨가 아이스커피를 한 잔씩 돌렸다.

김씨보다 조금 늦게 이 모씨(43세)가 들어왔다. 같은 건물에서 스피닝이라는 다이어트용 댄스를 배우고 오는 참이다. 이 씨는 큰 세숫대야에 작은 토마토와 사과를 가득 담아왔다. 집에서 씻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온 토마토를 하나씩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사과는 4조각을 내서 나눠 먹었다. 빵과 메추리알을 삶아서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누드카페’는 작은 ‘나눔 냉장고’, ‘대화방’이다.
 

 

김 모 씨(59세)는 “나! 갑상선인가봐”, “무릎도 시리고”라며 목과 발목에 찬 금으로 된 건강목걸이와 발목에 찬 건강발찌를 자랑했다. 웃음소리가 목욕탕을 울렸다.

피로를 풀려고 온 목욕탕에서도 졸업과 입학을 앞두고 있는 학부모들에게는 자녀교육에 대한 불안한 고민은 떨칠 수 없는 미해결과제이다. 자녀를 다 키워 대학진학과 직장에 보낸 주부선배님들과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등에 입학을 준비하는 주부후배들 간의 짧은 자녀교육 상담 시간도 이어졌다.

장 모씨(59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우리 아이는 1등만 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적이 떨어졌다. 우리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키웠다면 순천에 건물 몇 채를 샀을 거야.”라며 탄식했다. 이말을 받아 “엄마 주도형 학습이 아닌 아이 스스로 하는 자기 주도형 학습이 필요하다”. “엄마가 아이들을 기계처럼 돌리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아이들이 자랄 수 없다”며 여기저기서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중학생 자녀를 둔 남광미(45세) 씨는 “늘 이맘때면 학년이 바뀌면서 잘 적응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라며  특히 3월은 ‘학구열이 불타는 달’이라고 했다. 엄마들끼리 학습지와 학원에 대한 정보도 공유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엄마가 보내는 학원에 우리 아이도 보내게 된다. 그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그렇다.

이 모씨(44세)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이 다 뭔가를 배우고 있으면 우리 아이도 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활비를 쪼개서라도 학원에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보다 주변 똑똑한 엄마들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내 아이가 밀린다고 느껴서 보낸 경우가 많았다. 우리 아이는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영어학원과 피아노학원을 보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는 김 모씨(53세)는 이런 생각에 조언을 해준다. “엄마들은 예전에 자기가 자랐던 시절을 생각하고 학원을 보내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꿈은 의사나 변호사 등 ‘사’자가 아니다. 얘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된다든지 컴퓨터를 개발하는 등의 꿈을 꾸고 있다.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맞아야 되는데 시대변화에 맞게 엄마들은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목욕탕 ‘누드카페’에서도 주부들의 관심은 자녀교육이었다. 이것은 공교육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코 어머니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는 현상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어머니들은 사교육에라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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