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여고 역사교사

3·1절이 되면 순천에서는 기념식을 낙안에서 한다. 낙안읍성 매표소 맞은편에 낙안 3·1 독립 운동 기념탑이 높게 서 있다. 그 탑 앞에서 시장과 시의원, 전남동부보훈지청장 등 기관장과 낙안 출신 독립 유공자의 후손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있을 것이다. 순천의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연극단원들이 그날의 상황을 연극으로 재현해왔는데 올해는 어쩔지 모르겠다.

민족 수난기 항일 독립운동의 꽃이요 봉우리로 누구나 3·1운동을 꼽지만, 이를 기념하는 행사는 기념식이 전부이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8·15기념식도 형식적인 기념일로 그치고 있다. 겨레의 축제가 되어야 할 두 국경일은 태극기도 달지 않고 놀러가는 날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으니 순국선열들이 얼마나 통탄할 것인가.

친일파가 득세한 나라에서 독립 유공자 표창이 제대로 이뤄졌을 리 없다. 친일파가 독립유공자가 되어  국립묘지(현충원)에 안장되어 있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주암 출신 백강 조경한 선생이 자신을 국립묘지에 묻지 말아달라고 했을 것인가. 늦게나마 친일 청산 작업이 진행되면서 독립유공자 중 친일 행적이 드러난 20명의 서훈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백범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김창룡, 친일 언론인 방우영 등은 아직도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이 을사늑약 이후 독립유공자가 9300명밖에 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았다. 10년이 지난 국가보훈처 누리집의 공훈전자사료관의 기록에 따르면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4,830명이다. 이 가운데 전라도 출신은 2009명으로 경상도 출신 3293명에 비해 낮게 나온다. 좌파와 민중운동 계열 인사에 대해 외면한 탓이리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도 아직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수립된 새 정부가 제대로 된 보훈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하지만 중앙에만 맡기지 말고, 지방에서 더 많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현창해야 한다. 보훈처 누리집에서 검색되는 순천 출신은 54명이다. 이 가운데 5명은 출신지가 승주로 되어 있다. 순천 출신이 명백한 김양수 선생은 서울로 되어 있다. 54명을 계열별로 보면 의병 10명, 3·1운동 28명, 국내항일 5명, 학생운동 4명, 임시정부 2명, 광복군 1명, 미주 방면 1명, 일본 방면 1명, 문화운동 1명, 군자금모금 1명이다. 가장 많은 3·1운동 관련 유공자의 대부분은 낙안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에 순천은 전남 동부의 중심으로서 일본에게는 침략의 거점이었지만 우리 민족의 시각에서 보면 항일의 중추였다. 소작쟁의가 먼저, 치열하게 전개된 곳이었다. 당시 순천의 농민운동과 사회운동을 주도한 4인방이 있었다. 김기수와 박병두, 이영민, 이창수인데 이 중 박병두 선생만 노무현 정부 때 표창을 받았을 뿐이다. 판소리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이태호 이사장이 판소리 보존 공로자이기도 한 벽소 이영민의 포상 신청을 갖가지 자료를 수집하여 여러차례 신청했지만 기각을 당했다. 김기수는 월북한 것은 맞지만, 북 정권의 요직을 맡은 것도 아닌 것이라면 해방 이전 농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삶 자체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지역 출신 독립 운동가에 대한 현창도 지지부진하다. 순천의 3·1운동을 주도한 박항래 의사의 동상을  중앙시장 맞은편에 세웠고, 백강 조경한 추모비를 금당공원에 세운 것으로는 부족하다. 작년 11월 윤소하 정의당 국회의원이 백강 생가가 방치되어 있는 현실을 국감에서 지적했다. 생가 복원비 1억 8천만 원을 중앙 정부가 예산이 없다고 잘랐다고 하면 순천시가 그 정도 지출할 예산 여유가 없을까. 지난해 그 뉴스를 보면서 순천시민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남교 오거리의 전남CBS사옥 건설예정지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김양수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곳이다. 후손이 유지해 오다가 매각하면서, 이젠 흔적없이 사라졌다. 순천만길 통천마을에 김양수묘의 입구에는 표지판 하나도 없다. 문화의 거리에 있는 한옥글방은 학병으로 징집 당했다가 탈출하여 광복군 활동을 한 성동준 선생의 집이고, 옆골목으로 조금 더 가면 학병으로 갔다가 탈출하여 냅코 작전에 참여했던 박순동 선생의 집이 있었다. 가곡동 서씨 선산의 서정기 묘소 자리에는 선생의 유해를 현충원으로 옮긴 후 비석만 을씨년스럽게 남아있다.

부끄럽게 맞는 3·1절이다. 애국 선열의 값진 희생을 기념할 줄 알아야 나라를 지켜낼 힘이 생기는 법이다. 순천은 인물이 많은 고을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지역 출신 애국 선열을 발굴, 현창하는데 너무 인색하다. 순천시와 보훈지청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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