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 파악 유일 생존자 / 곽예남 위안부 피해 할머니(94세) 생일잔치

시민단체·학생들 참여해 다채롭게 축하
 

난데없는 봉변, 나물 캐다 끌려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위안부‘ 할머니가 31분 생존해 계시는데 전남, 광주 지역에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는 분이 곽예남 할머니이시다.

1924년 담양에서 태어나 살다가 1939년 16살 어느 날…
대 여섯 명의 동네 또래 동무들과 들에서 봄나물을 캐다가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본군들에게 끌려갔다.

동무들은 풀려났지만 소녀 혼자는 풀려나지 못하고 덜커덩 거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몇 날 며칠을 달려 간 곳이 중국 땅 만주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갑자기 끌려가사라지자 그 충격으로 홧병에 그 다음 해 2월에 돌아가셨다. 소녀의 어머니는 평생의 소원이 딸을 찾는 것이었지만 끝내 끌려갔던 딸을 잊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소녀는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그곳에서 자식이 있는 남자에게 재취자리로 갔다. 남자의 자식들을 키우며 19년을 사시면서 슬하에 자식 한 명 낳지 못하고 사셨다고 한다.

중국에서 60년을 생활하시다가 80세 되던 2004년 6월 4일 대한민국으로 오셔서 담양에 정착했다. 열 여섯 살 소녀가 여든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제일 처음 찾았던 곳이 소녀가 살았던 초가집이었지만 그 터만 있을 뿐 부모님, 형제와 살았던 초가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는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만 찾으시면서 보따리를 싸고 나가신다고 한다. 아마도 부모, 형제와 작별도 하지 못 한 채 헤어졌던 원한이 어린 소녀의 마음과 생각에 사무쳐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고통 되새길 수 밖에 없는 아픈 생일

▲ 곽예남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그 어렸던 소녀가 아흔네살 생신을 맞이했다.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순천평화나비, 민족문제연구소광주지부, 해남평화나비, 담양평화의소녀상위원회, 광양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광주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광주산정중학교학생회학생들(11명), 담양대치지역아동센타(12명), 광주평통사, 민중당여수엄마당여성위원회에서 함께 했다.

그리고 평창올림픽에 초대받은 입장에서 흥겨운 잔칫집에 재나 뿌리는 발언을 하며 과거 전쟁범죄의 반성과 사죄는 커녕 한반도 평화를 흔드는 아베 총리의 방한을 규탄하는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들은 “16세에 납치되어 보낸 고통스런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곽예남 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전남·광주 평화나비들은 전쟁범죄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죄를 하고 그분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되는 날까지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는 날까지 전 국민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남평화의소녀상연대 최미희 집행위워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아직도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은 해결되지 않았다.”며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사죄와 배상을 꼭 받을 것이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 위로와 축하의 공연 펼쳐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들은 편지를 써서 할머니께 전달했다.

산정중학교 이진 학생회장은 “학교에 있는 작은 평화의 소녀상은 학생회 간부들이 약 6주간 모금운동을 통해 설립비를 마련했다.”고 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같아 죄송하다. 학생회 간부들과 함께 참된 진실을 알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작은 소리라도 외쳐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산정중학교 김예건 학생은 “일제강점기 때 받은 고통을 세상에 말하는 것은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한번뿐인 소녀들의 인생에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저는 정말 화가 납니다. 할머니, 일본이 할머니 앞에 무릎 끓고 사과하는 그날 까지 오래 오래 사셔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할머니와 함께 있습니다. 생신 축하드리고 힘내세요.”라는 편지글을 읽어 드렸다.

그리고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강진여중 김하윤 학생이 가야금 연주로 ‘아리랑’을 들려주었으며 담양대치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오카리나 연주하는 것을 끝으로 생일잔치는 마무리되었다.

곽예남 할머니를 통해서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달았다. “또 다른 아픔이 오기 전에 깨어있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듯이 결코 이 땅 어느 곳에서든지 두 번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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