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장직 선거 공식 출사표 던진 윤병철 지방분권전남연대 상임대표

윤병철 지방분권전남연대 상임대표가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시장직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이번 도전은 세 번째다. 첫 번째는 8년 전인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였다. 무소속으로 시작해 선거 직전 국민 참여당 후보로 시장직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들어야 했다. 당시 선관위가 집계한 득표율은 6.39%였다.

그는 6년 전인 2012년에도 시장직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 중도에 무릎을 꿇었다. 그해 선거는 노관규 당시 시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사퇴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였다.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출전했으나 공천받는 데 실패했다.

그 후 그는 정치권을 떠나 야인으로 살았다. “2016년에는 서울로 올라가 동생과 학원을 차려 운영했다.”고 한다.

“촛불혁명이 정치DNA를 깨웠다.”

그런 윤 대표가 다시 순천시의 정치권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2016년 ‘촛불혁명’이라고 대답한다.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이 나를 정치권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면서 ‘이곳이 내가 있을 자리다.’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정치 DNA가 깨어났다.”

윤 대표에게 시장직에 대한 도전 의지를 북돋워 준 것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2010년 시장선거 패배 후의 장면이다. “선거에서 지고 열흘간 시내에서 낙선사례를 했다. 낙선사례를 하는 데 응원해주는 유권자가 많았다. ‘다음에는 꼭 찍어주겠다.’며 함께 울어주는 분들도 있었다.” 그 기억이 윤 대표의 잠들어 있던 ‘정치 DNA’를 더욱 흔들었다.
 

 


그동안 그가 걸어온 도전의 행로는 험난했다. 그가 2010년 선거에서 기록한 순위는 4명의 후보자 가운데 4위였다. 노관규 후보가 50.62%를 득표해 당선됐고, 민주당 조보훈(35.51%), 민주노동당 이수근(7.46%) 후보가 그 뒤를 이었다.

윤 대표는 2년 뒤 다시 시장직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 2014년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패배의 기억이 너무 아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그리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할 때까지는 정치적 동면기였다.

“정책으로 말하며 진정성 가지고 선거 임하겠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정치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의 프로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던 시절인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부의장 경력과 2014년 순천남승룡마라톤 조직위원장 등의 기록이 올라 있다.

그의 시장직 도전의 환경은 낙관만 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직 시장과 시의장이 출마를 공언한 상태이고, 직전 선거에서 2등으로 낙선한 유력 후보도 출마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민주당내의 경선은 4월 하순에 종착점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때 윤 대표가 웃을 수 있을까? 윤 대표는 “가능하다.”라며 자신한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윤 대표는 “정책선거다.”라고 대답한다.

“지금까지 시장선거에서 후보자들은 막연히 ‘내가 잘 할 수 있다.’고만 주장해왔지,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잘할지에 대해 정책으로 말하며 진정성을 가지고 선거에 임하겠다. 그러면 나의 진심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 순천시민은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현명함을 보여줬다. 그런 시민의식이 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다. 당원도 시민이므로 결과에 낙관한다.”

그는 정책선거를 위해 “50개의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출마기자회견에서 밝힌 3개의 정책은 그 일부라는 주장이다.

왜 3개만 발표했냐는 질문에 “시민들의 반응을 보겠다는 의미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앞으로 2~3개씩 계속 발표하겠단다.

그가 선보인 3개의 정책은 ▲세계환경회의 개최와 ▲노인연금 20만 원 추가 지급 ▲대학 통폐합을 통한 시립대학 설립 검토 등이다. 구체적인 실현방법과 재정마련, 또는 실현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장애 해결책에 대해서는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설명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겠다.”

윤 대표는 1월 23일 출마의 변에서 남승룡 마라톤에서 만났던 어느 학생의 일화를 언급했다. 암으로 위중한 어머니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다. 그의 시장직을 향한 도전도 그 자세의 연장이란다. 세 번째 장도에 오른 한 정치인에게 앞으로의 4개월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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