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1월 1일부터 약 2주 간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GEN: Global Eco village Network)의 청년 그룹인 넥스트젠 한국 지부(nextGEN Korea)가 기획한 교육/탐방 여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테마는 구들 놓기 워크샵 + 나는 난로다 + 공동체 탐방 + 맛있게 먹자.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적정기술 및 농촌에서의 생태적 삶의 기술에 대한 관심이 그를 이 여행으로 이끌었다.  그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지면에 풀어놓아 보려 한다. <편집자 주>


불의 영성 

동서양 어디서나 예로부터 불은 신성의 대명사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모닥불을 중심에 놓고 춤추던 고대 샤머니즘 시대에도 그러했고, 전통 가옥에서도 불을 지피는 화덕이 있는 부엌은 신성한 주거의 중심이었다. 주방은 단지 조리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한옥에서 주방에 해당하는 정주간은 튼튼하고 격식 차린 문을 설치한다. 그 문설주는 아래로 굽어 있는데 제의적 공간임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드문 기회로 모닥불을 응시할 기회를 가진 사람, 춤추듯 일렁거리는 불길을 넋놓고 응시해 본 사람이라면 불의 마력을 수긍할 것이다.

‘카즈’씨의 인도로 일행은 착화식을 가졌다. 아궁이 앞에 쌀과 소금, 술을 올리고 나뭇가지로 정성껏 장식했다. 옛 방식대로 부싯돌로 일으킨 불꽃을 섬유 뭉치에 옮겨 불씨를 일으키고, 그 불씨를 다시 잔가지에 옮겨 장작에 실어 날랐다. 그 과정을 모두가 둘러 서서 두근두근 지켜보았다. 장작이 붉게 타오르고 구들장 아래를 거쳐 연통으로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하며 박수를 쳤다.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불편하고 오래 걸리는 삶의 기술은 이처럼 당연하고 사소하게 여겨온 일상의 요소들에 신비와 감사의 느낌을 불러 일으키며 제의적 감각을 환기한다. 석유문명 속에 사는 현대인은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도 불을 편리하게 사용하지만 정작 불에 대해서 가장 무지하고 무력한 사람들이다. 편리와 효율이 앗아간 것이 이런 정서의 풍요로움이 아닐까?

나는 난로다

착화식 이후 카즈씨는 약속된 일정 때문에 먼저 급히 도쿄로 떠났고, 남은 일행은 구들장에 연기가 새지는 않는지 꼼꼼하게 점검해가며 바닥 미장까지 마쳤다. 마무리를 기념하며 각자의 이름을 기둥과 문지방에 써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구들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마친 일행은 제4회 ‘와따시와 스토브다(나는 난로다)’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히로시마로 이동했다. 이 행사는 본래 완주에서 개최되고 있는 행사를 본따간 것인데, 완주에서 7회 째를 맞는 동안 점점 규모가 불어나고 기술 수준도 높아져 한국 적정 기술 씬(장면)의 한 근거지가 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히로시마 외곽의 고즈넉한 시골, 카터 전 미대통령의 후원으로 지어졌다는 ‘카터 피스 센터’라는 휴양 시설에서 열렸다. 행사 규모는 아담했지만, 직접 제작한 다양한 난로와 화덕, 족욕탕뿐 아니라 이런저런 먹거리를 파는 부스들까지 꽤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적정기술 활동가 ‘달’이 한국의 적정기술 현황에 대한 발표를 했고, 내화 벽돌로 조립한 야외용 로켓 매스 화덕을 시연해 보였다. 이 화덕에 김치 부침개를 지져서 요리 시연을 해가며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출점한 다른 부스들의 다양한 음식 - 피자, 파스타, 라멘, 오뎅, 도싸(남인도식 쌀 크레페)… - 과 즉석에서 바꿔 먹었다. 쌀쌀한 야외에서 먹고 마시는 맛이 쏠쏠했다.

후쿠시마 이후, 삶의 전환을 추구하는 사람들

이번 행사는 후쿠시마 핵 재앙이 일본인들의 무의식 심층에 새긴 충격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후쿠시마와 가까운 동북과 관동지방을 피해 먼 관서 지방으로 ‘피신’했다는 사람들. 시골살이와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은 이런 풀뿌리의 의식전환과 잇닿아 있었다.

일본은 60~70년대 좌파 정치가 퇴조한 이래 정치계가 자민당 중심으로 매우 보수화되고 고착된 사회라서, 정치적 변화의 희망을 단념하고 개인적으로 주류 시스템 밖으로 탈출해 대안을 모색하는 ‘시골 아나키즘’ 을 추구하는 이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정치적 유동성이 비교적 높은 한국의 상황과 대비되었다. 우리는 어쨌든 ‘대통령 목을 따긴 하는 나라’ 아닌가? 적정기술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일부 지자체가 적정기술 행사나 도입에 약간의 지원을 하는 사례마저도 일본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반면 일본은 집단적 저항의 활력이 떨어진 대신 산촌과 시골에 뿌리내린 ‘자연주의적 히피즘’의 맥이 사회 저류에 살아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계속)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