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는 여전히 농촌지역이 도시지역 보다 압도적으로 넓다. 도시문제와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서면에서 17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계수 조합원이 농촌의 일상을 전하는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주>

 

▲ 김계수 조합원

지난해 성탄절 무렵에 지역에서 살고 있는 필리핀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의 송년 모임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 나라 국민 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탓에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각시들 또한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 모임에 신부님을 초대했고, 신부님은 나에게 함께 가보자고 요청했던 터였다. 성당 주일학교에 나오는 어린 학생들 대부분이 그들의 자녀이기 때문에 주일학교 교사들도 함께 했다.

모임 장소인 펜션에는 열 명이 넘는 필리핀 각시들, 예닐곱 명의 한국인 남편들, 그리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열댓 명의 자녀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뛰어노느라 제법 요란하고 활기가 넘쳐 보였다. 캄보디아에서 온 세 명의 각시가 포함된 이 모임은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데 성탄절 무렵에는 전 가족이 모여 송년 잔치를 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베트남 각시들도 함께 했지만 중간에 빠졌단다.

음식은 푸짐했다. 생강을 듬뿍 넣은 캄보디아식 돼지족발, 열대 과일로 만든 젤리도 있었지만 떡, 제육볶음, 쭈꾸미구이와 삼겹살 등 대부분 한국 음식에 복분자술을 준비했다. 밤새 먹고도 남을 만 한 양이다. 더운 지방의 독특한 향신료 맛을 각오했다가 조금 허탈했다. 자녀들이 그 맛을 싫어해서 집에서도 잘 만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인 남편들은 마당에서 따로 생굴구이에 소주를 기울이며 자기들끼리 담소하고 있다. 모임이 진행되는 도중에 손님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현역 군의원과 경쟁자들이 부인을 대동하고 차례로 다녀간다. 모임에 대한 그들의 관심 속에 표 이상의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읍사무소에서 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은 초저녁부터 계속 자리하고 있어 앞서 다녀간 손님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필리핀 각시 중에 한 명인 ‘L씨’는 고국에서 간호사였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린 직후에 이민을 결심하고 서른 살에 일곱 살 많은 한국 농부와 결혼했다. 처음에는 하우스 오이 농사를 지었는데, 술을 너무 마셔대던 남편은 병으로 일찍 죽어버렸다. 혼자 힘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지역아동센터 영어 교사, 목욕탕과 숙박업소 청소일 등을 하다 다치는 바람에 지금은 하는 일 없이 정부 지원을 받으며 요양보호사를 준비하고 있다. 작은 방이 두 개인 오두막에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과 시동생,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사춘기를 지나는 아들이 저만의 방을 원하지만 돈이 없어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임에 나온 아이들은 서로 웃고, 장난하고, 게임을 하는 등 구김살 하나 없어 보이지만 저 아이들의 미래도 지금처럼 밝을까. 단일민족이라는 강력한 허위의식 또는 고정관념과 극심한 경쟁 체제 속에서 미세한 차이로도 거대한 차별을 만드는 데 너무나 익숙한 한국 사회가 저 아이들을 얼마나 품어 안을 수 있을까.

2016년 통계를 보면 초,중,고에 재학 중인 학생의 2.5%에 달하는 1만여 명이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들은 우선 외모의 차이 때문에 구분되고, 한국말을 구사하는 데에서도 또래들과 다른 탓에 학업 성취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고 이혼 사례도 많아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 고학년에 이르면 그들 중 거의 절반 정도가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학교를 떠난 이 아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사회의 최하층에 속하는 불안정한 일자리들을 전전하다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 가운데 사회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교류하면서 점차 강력한 반문화집단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들이 성인이 될 10년 이내의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지 몹시 걱정스럽다. 유럽에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이민자 집단에 의해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이들에 의해 재연될 것 같은 우려가 그야말로 기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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