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행정학 박사 / 순천소방서 소방공무원

2018년 새해가 밝아온 지 며칠이 지나 이제는 새해라는 단어가 낯설어지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1월이며,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마음가짐을 했지만 이것이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필자가 소방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20대의 혈기왕성한 시절이었을 것인데, 지금은 지천명을 넘어섰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하겠다.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이 글을 읽는 것 또한 하나의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한다.

화재진압대원으로, 인명구조대원으로 무수한 날을 보냈다. 가끔 지인들과 필자의 근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이때 필자는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서두를 꺼낼 때가 많다. 지인들의 입장에서 당연히 ‘왜?’라는 단어로 물어보고 하나의 대화가 시작되고 끝이 난다. 필자의 운이 좋은 내용은 첫째, 같이 출동한 대원의 순직사고가 없었고, 둘째, 살아있는 시민을 구하지 못했던 적이 없으며, 셋째, 내가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다치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현장 활동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인명구조는 아직 경력이 쌓이지 않은 초보 진압대원이었을 때다. 건물 지하 화재현장, 새까만 연기와 몸을 따갑게 하는 열기 속으로 방수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착용하고, 호스를 끌고 진입을 했다. 지금은 열기까지 어느 정도 막아주는 방화복이지만 과거에는 단순히 물을 막는 수준에 고무로 된 장화를 신었다. 즉, 과거 소방공무원의 진압장비가 열악해도 한참 열악했다는 뜻이다.

방화문을 여는 순간 앞에 허연 물체가 보였다. 직감으로 ‘사람이다’라고 판단하고 품에 안고 내려왔던 길을 호스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화재현장에서 되돌아 나올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호스를 따라 가는 것이다. 구급대원에게 환자를 인계했을 때 안도감이랄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현장에 출동하였고, 진짜 운이 좋게도 살아있는 요구조자를 구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제일 자랑스러운 일일 것이다.

만약 우리들의 능력이 부족해 살아있는 생명을 구하지 못했을 때 어떠한 감정이 들까? 스스로 생각하기 싫을 정도이며, 장비가 부족해서라든지, 전문분야가 아니라든지 구구한 변명을 할 수도 없이 생명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항상 죄인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그러한 상황이 왔다면 아마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직장을 선택했을 확률이 높다.

소방공무원들이 현장 활동을 하다 순직할 경우 뉴스에서 조금 다뤄지다 금방 잊혀진다. 그렇지만 우리 소방공무원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죽음이 아닌 곧 내 자신의 죽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한 번의 순직에 한동안 심각해진다. 현장 활동 중 당하는 부상에 대해서는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소방공무원의 통계에 등장할 뿐이다. 심각한 부상을 입어 정든 직장을 떠나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상황을 바라보는 같이 출동했던 동료들은 어떠한 생각을 할까? 순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소방공무원들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필자가 운이 좋다고 하는 것은 몇 바늘 꿰매거나 정형외과 진료를 받고, 붕대를 감는 정도였다는 사소한 부상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동료가 순직하거나 부상을 입었을 때 그 트라우마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우리들이 근무하는 곳은 1년 12월 24시간 그 어느 순간에도 휴무가 없는 곳이기에 같이 근무를 하고, 같이 밥을 먹었고, 같이 쉬었으며, 같이 현장 활동을 하는 어찌 보면 가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동료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료가 순직하여 영면의 길을 떠나야 할 때도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감내를 하면서 소방관서를 지켜야 했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직장에 취직을 하는 등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것이다. 성공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은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처음에 마음먹었던 것이 순수했고 진취적이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독자들도 어떤 일을 새로 시작했을 때 ‘초심’이 어떤 것이었는지 한번 생각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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