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근혜
더드림실버타운 대표

하루를 가만히 돌이켜보자. 오늘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무엇이었는지. 오늘 누구를 만나 즐거웠고 무엇을 먹어 맛있었고 어떤 옷을 입어 따뜻했으며 어떤 일 때문에 행복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많다면 참으로 잘 산 하루를 살았다고 할 것이다. 반면, 누군가로 인해 속상했거나 음식을 먹으면서 맛없다고 불평했거나 옷장을 열어보니 입을 옷이 하나도 없어 짜증이 났다면 또다시 만날 사람 때문에 속상할까 봐 걱정, 입맛이 없어 뭘 먹을지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아 걱정, 내일 동창회에 가기로 했는데 마땅한 옷이 없는 것도 걱정일 것이다.

그나마 이런 현실적인 걱정은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 다행인 걱정이지만 사람은 사는 동안 하게 되는 걱정 중에 90%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거나 이미 일어나 버려서 아무리 걱정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인은 평생 30일을 웃고 10년을 걱정하며 산다고 한다. 그만큼 웃을 일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웃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고 그 자리를 많은 걱정으로 채우기 때문일 것이다.

실버타운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분들이 계신다. 편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사무실을 찾아와서는 “우리 아들한테 전화 좀 해줘 봐,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아무래도 꿈자리가 심상치가 않아. 뭔 일이 있는가 얼른 전화 좀 해줘” 하신다. 꿈 이야기를 다 들어드리고 걱정이 많으시겠다고 달래드리면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해 드리면 얼마 있지 않아 또 오신다.

“지난번에 손주가 전화가 왔는디 작은 아베가 위암이라든디, 아이고 늙은 내가 죽어야 쓸 것인디, 우리 작은놈이 나보다 먼저 가뿔믄 우짜까. 수술은 잘 했당가? 병원에는 언제까지 있어야 한당가? 한번 물어봐 주소”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고 위로해도 안될 때는 보호자와 전화를 하도록 연결해 드리면 걱정이 끝날 것 같지만 통화가 끝나자마자 다시 걱정이 또 생긴다. “수술은 잘 했단디, 글씨 그것이 진짜로 잘된 것인지 나가 걱정할까베 거짓꼴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겄어. 암이단디 그것이 그리 수월허지가 안컸제?” 며칠 후 자녀들이 와서 수술도 잘 됐고 초기라서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안심을 시켜 드리고 갔지만, 할머니의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올해 구십너이가 되브렀는디 어째야쓰까, 참말로. 이러다가 백 살 넘게 살믄 우짠디야.”하며 연세 많으신 것이 걱정, 날이 추우면 “밭에 배추가 다 얼어불것구만, 이리 추우믄 저걸 못먹을 건디 꽁꽁 싸매야 쓸 것인디, 나는 이리 다리가 아파가꼬 허도 못 흐고 어찌까?” 눈이 오면 “우리 아들이 배 타고 장도에서 벌교까지 댕기야 헌디 이리 눈 오고 날이 우새시런께 못나올 꺼인디 어찌고 있당가”하며 걱정을 하신다. 그러면서 비닐을 모아다가 노끈을 찾아들고 텃밭에 남겨둔 배추 몇 포기를 결국 꽁꽁 싸매놓고 올라오시고 햇빛 나는 날에는 삶아서 잘라놓은 무를 말리신다고 바구니를 햇빛 잘 드는 곳으로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시느라 바쁘시다.

90이 넘은 나이지만 치매도 없으시고 몸도 농사일을 하실 만큼 건강하신 것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시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걱정거리를 안고 사시는 것이 마음 아플 때가 많다.

그런 어르신들을 위해 얼마 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나 해 보았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사위가 요즘 인형 뽑기에 취미를 붙여 딸 집에 인형이 발에 체일 지경이라며 인형을 한 박스 들고 오셨다. 어르신들 심심하실 때 인형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가져오신 것이다. 일명 ‘걱정 인형 프로그램’이다.

걱정 인형은 과테말라 원주민들이 옷을 만들고 남은 천으로 만든 2~3cm의 소박한 인형이다. 잠들기 전에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자면 걱정이 없어진다고 해서 걱정 인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해서 모 보험회사의 광고에 사용되기도 했고 6~7세 유아들이 잠들기 싫어할 때 걱정 인형을 베개 밑에 넣어주기도 하는데 어르신들에게 이 인형을 소개해 드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멋쩍어 하시고 “이게 뭐간디 걱정을 대신해 줘. 참말로 쓸데없는 것도 다한다.”하시더니 인형을 내 얼굴 앞에 두고 인형이 말하듯이 “할머니, 저는 걱정 인형이예요. 할머니 요즘 며느리가 다리 수술해서 병원 가 있는 게 걱정이시죠”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래, 오메 그걸 니가 우째 알았다냐?”하시며 말을 받으신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는 내가 아니라 걱정 인형에게 정말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고 계셨다.

그 후로 며칠, 할머니 머리맡에는 걱정 인형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처럼 인형을 안고 주무시기도 하신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걱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여전히 걱정을 늘어놓으시지만, 평생의 습관처럼 해오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더라도 그렇게나마 걱정을 잠시 내려놓으실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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