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1월 1일부터 약 2주 간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GEN: Global Eco village Network)의 청년 그룹인 넥스트젠 한국 지부(nextGEN Korea)가 기획한 교육/탐방 여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테마는 구들 놓기 워크샵 + 나는 난로다 + 공동체 탐방 + 맛있게 먹자.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적정기술 및 농촌에서의 생태적 삶의 기술에 대한 관심이 그를 이 여행으로 이끌었다.  그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지면에 풀어놓아 보려 한다. <편집자 주>


‘달’과 ‘오하이오’의 온돌 강의
작업을 마친 저녁 시간에는 기술 지도를 맡은 ‘달’과 ‘오하이오’가 적정 기술 전반에 대한 이해와 온돌의 변천사, 장작 연소의 이해 등에 관한 강의를 이어나갔다. 그 중 인상깊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온돌의 장점을 눈여겨 본 일본 정부가 일본 본토에 온돌을 이식하려고 시도했다는 이야기였는데, 금시초문이었다. 그 시도는 낯선 온돌 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미비했던 당시 일본 기술자들의 숙련 부족으로 인해 결국 기술적 실패를 겪으며 좌초했다고 했다. 오늘날 시각에서 수준 낮아 보이는 전통 기술이지만, 그 바탕에도 상당한 문화생태적 인프라가 깔려 있었을 것이고, 기술을 이식하려면 그 바탕도 섬세하고 겸허하게 경청했어야 할 터인데…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식민 지배 본국의 기술자라는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노래와 이야기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작업하고 숙식을 같이하는데 노래와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이야기와 음악은 사람이라는 씨실을 공동체로 엮어내는 날실인 것이다. 통역을 도와 준 ‘아미짱’(한국 거주 경험이 있어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한다)의 심플한 통기타 연주에 실린 맑고 고운 목소리에는 산들바람같은 청량함이 있었다. 일본어와 한국어 가사를 넘나들며 나도 같이 ‘임진강’을 불렀다.

삼대 째 미장공이자 앨범도 낸 뮤지션 유우타’의 테크니컬한 기타 연주와 힘있는 발성에 모두가 들썩였다. ‘사토야마(시골, 산촌) 사람들’이라는 가족 밴드 이름답게 노래 내용도 ‘균 이야기’등 자연과 밀착한 시골살이의 정취를 담아내고 있어 재미있었다. 그가 일본어 가사로 노래한 존 레논의 이매진’은 모두가 어울려 열창했다. 

나도 틈틈이 가져 간 피리를 꺼내 불며 흥을 돋궜다. 익숙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음악을 연주했을 때 한일 양국 참가자들의 호응이 가장 좋았다. 

밥상 공동체

▲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공동체의 핵심은 역시 함께 나누는 음식이다.

밥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공동체의 핵심은 역시 함께 나누는 음식이다. ‘식구(밥 먹는 입)’라는 말이 가족의 의미를 갖고 있듯, 식사를 같이 하면 옥시토신(유대를 강화하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분비가 활성화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워크샵의 요리 담당으로 초빙된 ‘아키짱’은 꼼꼼하고 섬세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다운’ 요리 솜씨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현재 시골과 도시를 분주히 오가며 시골 정착의 기반을 닦고 있었다. 매일 메뉴를 달리한 정갈한 일본 가정식 밥상에 모두들 군침을 삼켰다.

▲ 요리 담당으로 초빙된 ‘아키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다운’ 요리 솜씨의 소유자로  매일 메뉴를 달리한 정갈한 일본 가정식 밥상을 준비해 주었다.


나는 커피 중독자(?)답게 그 와중에도 로스팅 카페를 찾아내 원두를 사 와서 매일 신선한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탐하는 것은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닌데, 옥의 티(?)로 봐주시라.

늦가을~초겨울인데 논두렁 곳곳에서 탐스런 달래를 발견했다. “역시 시코쿠는 한국 남부 지방보다도 따뜻하군. 한국에선 봄나물인데.” 달래를 캐다가 한국식으로 무쳐서 달래장을 만들어 내었더니 인기만점이었다. 특히 한국 참가자들은 매운 맛이 아쉬웠을 터이니.
 

▲  달래를 캐다가 한국식으로 무쳐서 달래장을 만들어 내었더니 인기만점이었다.

전통 욕조 고에몬부로
일본 전통 가옥의 구성 요소 가운데 가장 탐났던 것은 장작을 때서 덥히는 무쇠솥같이 생긴 욕조 ‘고에몬부로(일본의 홍길동같은 존재인 대도 고에몬이 붙잡혀 처형당할 때 무쇠솥에 끓는 기름 속에 들어가 죽었다는 설화가 있는데, 이를 연상시킨다 하여 이런 살벌한 이름이 붙었다. 고에몬+목욕탕)’였다. 장작 타는 연기 냄새를 맡으며 작업 후 노곤해진 몸을 뜨거운 욕조에 담그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흐뭇했다. 언젠가 내 오두막을 짓는 날, 이 고에몬부로를 꼭 도입하리라 하고 마음먹었다.

완공을 앞두고 착화식, 불의 신성
기술 지도와 통역을 담당한 ‘오하이오’의 다리 부상 때문에 작업 페이스는 예상보다 조금 늦어졌다. 다행히 오하이오의 다리 상태는 작업 후반 쯤 되어 꽤 회복되었다. 바쁜 매일매일이 흘러가며 구들방은 착착 그 모습을 갖춰갔다. 1단계 바닥 미장이 완성되었을 시점에, 최종 미장 작업을 미뤄두고 우선 착화식을 가졌다. 첫 불꽃을 피우는 일에 제의가 빠질 수 있겠는가?

(다음 편에서는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4회 ‘와따시와 스토브다(나는 난로다)’ 행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일본 아래로부터의 전환 이야기, 후쿠시마 이후, 리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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