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는 여전히 농촌지역이 도시지역 보다 압도적으로 넓다. 도시문제와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서면에서 17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계수 조합원이 농촌의 일상을 전하는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주>

 

▲ 김계수 조합원

엊그제가 동지인 것 같은데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새 낮이 꽤 길어진 듯하다. 우리 집의 한 해 농사가 비로소 마무리 되고, 1월 말 쯤에 고추씨를 모종상에 넣기까지 한 달 정도가 논밭 농사에서 해방되는 농한기다. 올해 동지는 애기동지라고 한다. 동지가 음력으로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기동지라 부르는데 올해는 가을에 윤달이 들어 자연히 애기동지가 되었다. 동네에 나많은 어른들은 윤달을 공달이라 하는데 공짜로 한 달을 벌었다는 뜻일 게다. 애기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해먹는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떡은커녕 팥죽도 잘 쑤어먹지 않는다. 그래도 세시를 그냥 넘기기 아쉬운 사람들은 벌교에 있는 죽집에 가서 새알심이 들어 있는 팥죽을 사먹기도 한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동지가 은근히 기다려진다. 그 이유는 우선 동지를 즈음해서 한해 농사가 완전히 끝나기 때문이다. 농부들은 한해 농사일의 고역은 눈이 와야 끝이 나고 평생의 고역은 죽어야 끝나는 것 아니냐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동지 무렵이 돼야 김장이 끝나기 때문에 배추를 절여서 파는 농가에서는 한해 농사가 완전히 마무리되는 것도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기 시작하고도 한참 지난 이 즈음이다.

동지가 기다려지는 또 다른 이유는 닭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산란율이 떨어지게 된다. 닭의 산란율은 일조량과 온도, 사료 섭취량에 정확하게 비례한다. 겨울에는 일조량이 줄고 닭들이 추위에 대비해서 체내에 지방을 비축할 뿐 아니라 열량을 빼앗기는 바람에 산란율이 20%까지 감소한다. 그래서 하지를 넘기면 먹이를 이전보다 10% 정도 더 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가을에 닭 관리에 차질이 있어 이번 겨울에 달걀이 모자라 하루에 끝내야 할 배달을 다음날 다시 시내에 나가야 하는 등 애를 많이 먹었다.

또 겨울에는 닭이 먹을 물이 얼어서 어려움이 많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 닭도 물이 없으면 먹이를 먹지 않는다. 우리 동네는 고지대의 북사면에 있는데다 동쪽에 산이 가까워 아침 햇볕을 늦게 받기 때문에 닭장 급수기의 얼음이 잘 녹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에 얼음을 깨내고 머리 말리는 기계로 물이 나오는 호스의 끝을 일일이 녹여주어야 한다. 이럴 때면 햇볕을 한 시간 정도 빨리 받고 훨씬 따뜻한 인근 낙안 땅이 부럽다. 그러나 여름에는 반대로 덜 더우니 그것으로 보상받는다. 닭은 더위에 죽을 수 있지만 추워서 죽지는 않는다. 한낮에도 기온이 영하에 머물러 있으면서 햇볕도 없으면 대책이 없다. 그럴 때는 닭이 횃대에 오르는 해거름까지 물을 떠다가 급수기에 계속 부어주어야 한다. 양계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그런 날이 겨울 한 철에 며칠씩 있었지만 그새 온난화가 더 진행되었는지 최근에는 겪어보지 못했다.

동지가 기다려지는 것은 그것이 모든 생명 활동의 원동력인 태양의 움직임에 변곡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에 가장 왕성했던 태양 활동은 점차 하강하여 동지에 가장 위축되었다가 반전한다. 그래서 동짓날 해가 남중(정남에 위치)하는 시각이 한 해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태양의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사계절의 변화가 생기고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 활동의 순환도 이뤄진다. 농부 또한 그에 맞춰 봄에 밭 갈아 씨 뿌리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이면 거두어 겨울에 저장하고 쉰다.

계절의 변화는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상태로 태양 둘레를 공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어떤 종교에서는 지구의 자전축이 똑바로 서면 후천개벽이 일어나 세상 모든 일이 조화와 질서를 회복할 거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시작과 끝의 순환 과정 속에 있을진대 순환과 변화가 거세된 지구가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다채로울 수 있을까. 지구 자전축을 기울인 것은 내 눈에는 조물주가 발휘한 최고의 창의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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