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완주군 봉동읍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전주역에서 택시를 탔다.

“봉동에 있는 OO 장례식장 가 주세요.”
“처음 가세요?”
“두 번째 가는 길인데요.”
“얼마에 가셨어요?
“미터기 요금으로 가시면 안 되나요?”
“......”

잠시 후 갑자기 기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손님, 제가 미터기를 누른 것이 실수였네요. 제가 미터기를 안 누른 상태에서 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거는 승차거부가 아닙니다.”
“네? 그걸 왜 저에게 말해 주시죠?”
“그냥 알아두시라고요.”
“기사님,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손님을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승차거부가 아닌가요?”

기사님은 미터기 요금으로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을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택시로 완주군에 가면 돌아올 때는 빈차로 와야 하는데, 기사님 입장에서는 미터기 요금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웃지역인 익산은 시계외할증이 40%인 것에 비해 전주는 시계외할증이 20% 밖에 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기사님, 이 할증 체계가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시면 전주시에 문제 제기를 하셔야지, 그 책임을 승객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맞지 않은 것 같은데요?”
“택시기사들이 전주시청에 가서 항의를 하고 그랬는데, 바뀌지가 않아요”
“그럼, 제가 전주 시민은 아니지만, 전주시청에 제가 민원을 제기해 볼게요.”

그 얘기를 건넨 순간, 기사님의 눈빛이 호의적으로 바뀐 것 같다.
“기사님, 저는 순천시 상사면에 사는데요. 면에 산다는 이유로 복합할증을 40% 내면서 타요. 빈차로 돌아가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택시탈 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회사 택시만 타요. 회사 택시 기사님들을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그런데 오늘은 안 좋은 일로 고향에 가는데, 이런 일들을 겪으니 기분이 안 좋네요.”

장례식장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미터기에는 ‘10,500’이 찍혀 있었다. 
“기사님. 처음부터 승차거부를 생각하시기보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서로 양해를 구해서 금액을 합의해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사님 빈차로 돌아가시니까 만 오천원 드리겠습니다.”
“너무 제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해서 손님한테 미안해요.”

녹록치 않은 택시노동자들의 경제적 사정을 생각하면 기사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돈’의 위력 앞에 ‘저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고 싶다’는 선의가 사라져 가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만약 전주시에서 시경계를 벗어나서 빈차로 돌아오는 택시에게 요금의 20%를 보전해 주는 정책을 편다면 그 선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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