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변화 필요한 진학시험 이후 학생 교육

우리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학생들에게 원하는 프로그램을 설문 조사하다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이제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교에서 제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해도 참여하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수업을 하지 않으니, 일과 시간에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웁니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사람 자체가 무기력해지고, 재미가 없습니다. 시간이 아깝습니다.” 이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의견이다.
교사들은 어떨까? “큰 시험을 끝내고 사실 학생들도 쉬고 싶을 겁니다. 사람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무엇을 제공해도 학생들은 흥미가 없습니다. 수능 이후 마땅히 할 것이 없으니 놀린다는 것이 문제인데, 지금의 상황이 부끄럽기도 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 때문에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마지막 학창시절을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이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아까운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일까? 수능 이후 아무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능 이후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학교에 요청한다면?” 학생들은 다양한 요구를 쏟아냈다.

자격증 강좌, 인생 상담 프로그램, 운전면허, 토익, 바리스타 체험, 영어팝송 노래 부르기, 교육방송, 인생선배들의 충고 한마디, 컴퓨터 자격증 수업, 취미를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 토익 준비를 위한 맞춤형 수업, 다양한 진로체험 프로그램, 입시로 인해 읽지 못한 책들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 기타 배우기, 화장하는 기술, 도자기 굽기, 천연염색, 오카리나 배우기, 어휘 실력 향상을 위한 공부, 취미나 흥미를 고려한 동아리 활동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많아서 근로기준법이나 최저 임금에 대해 알고 싶은 학생도 있었다. 수능을 잘 못 본 학생은 자살방지 교육을 시켜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시·도교육청의 현실
고3 학생, 중3 교실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는 일차적으로 교육부의 책임이다. 다음으로는 시·도교육청의 느슨함에 그 원인이 있다. 그렇다고 학교의 책임이 모면되는 건 결코 아니다. 제도의 미비를 탓하며 마냥 하던 대로 따라가는 것은 학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미비한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학교 현장의 열정어린 노력이 있으면 일정 부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관성과 아이들의 요구에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쉬울 게 하나도 없다. 교육부(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시도교육감협의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내년(2015학년도) 대학수능시험을 11월 중순에 실시한다고 한다. 올해 11월 7일보다 10일 정도 늦춘 셈이다. 그러나 11월 말이나 12월 초순으로 보름 정도 더 늦추면 안 될까? 그리고 교육과정 운영을 거기에 맞추도록 제도화하면 되지 않을까? 학교나 교육청에서는 건의-요청하고 교육부에서는 지시하면 될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날씨가 추워진다는 이유를 들어 더 연기할 수 없다고 했으나, 비행기 이착륙도 미루도록 하는 판에 날씨를 탓하는 건 궁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2월 초가 되면 1, 2학년 학생들까지 기말고사가 끝나 대부분의 학교가 교육과정을 느슨하게 운영한다. 학기말의 여유 있는 때에 맞춰 그 시기에 맞는 교육과정을 학교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다시 말해, 학년말 시험을 본 이후부터 방학과 다음 해 2월까지의 교육과정을 새롭게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기말고사 이후부터 2월까지를 ‘자유학기’라고 명명하고 거기에 맞는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짜서 교육청에 보고하고 운영하라고 하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고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학년도 교육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이에 대한 계획을 세워 진행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책임 방기만 탓하며 단위 학교에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지적이다.

학교별로 진행되는 것을 공유해 보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영화를 보거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체험활동, 교양 강연 등을 배치한다. 때로는 담당 교사가 들어오지 않은 교실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 벌교여고는 고3 학생들이 학교 벽에 벽화를 그리는 작업도 계획되어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배치하기도 한다. 매산여고는 여학생이라 화장하는 기술에 대한 강의가 인기 있었다. 벌교여고에서는 DVD나 혹은 영상물 중에서도 세계여행 다큐를 본 것을 의미 있게 생각했으며, 또 다른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광양고등학교에서는 ‘지역사회를 바로 알자’는 취지로 매천 황현의 생가와 묘소를 방문하여 그의 삶과 정신을 배우고, 학교 앞 서산을 등반하면서 서천의 자연환경도 돌아봤다.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기도 하고, 극단 신명을 초청해서 5·18 관련 극을 관람하기도 했다. 어차피 학생들이 흥미가 없으니, 아무것도 안 한다는 학교도 있었다. 의미 있는 시도로 순천고에서는 순천대 철학과와 함께 인문학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하자
순천지역에는 순천시 평생학습과를 통해 배출된 다양한 인적 자원과 여성문화센터를 통해 배출된 자원이 있다. 그리고 생활을 고민하는 영세 업체들이 있다. 그뿐 아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들이 있다. 순천지역은 자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다. 지역사회 인재를 활용하여 학생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활동을 한다면 지역사회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순천시가 순천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에 지원하는 교육환경개선사업비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교육공동체 시민회의 김효승 상임대표는 “순천지역 내 교육관련 네트워크가 구성되면 이러한 논의들이 가능하다. 지역 내 여러 가지 교육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면 순천지역 교육환경이 많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내 노동상담소 김재진 소장은 “최저임금 강의나 근로기준법 강의는 요청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란직업훈련원 류정호 원장은 “맞춤형 컴퓨터 교육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원하는 배움을 언제든지 제공할 수 있는 인적자원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것을 공들여 엮으려는 시도가 없을 뿐이다. 수능을 끝낸 고3 학생들의 요구 중에는 매서운 요구가 적지 않았다. “그냥 일찍 보내주세요.”


■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는 벌교여고

스트레스 해소가 먼저

벌교여고는 정규일과 시간인 오후 4시 30분까지 학교에서 하반기 축제 및 동아리 발표회 준비를 한다. 축제 준비를 통해 학년 전체가 소통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학교 벽에 벽화그리기와 졸업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조별로 스스로 코스를 정해 가는 2박 3일 졸업여행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직업체험교육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고, 진로교육으로는 대학교수를 초빙해 강연을 듣고, 우주과학캠프도 간다. 쉬는 시간에는 세계 여행 다큐를 보고 리더십 교육과 레크레이션 교육을 받기도 했다. 가장 인기 있었던 강좌는 바리스타 교육이었다.

지역과 함께 하는 사업으로 고흥보성환경운동연합과 공동주관으로 밀양사진전과 밀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은 다큐를 상영할 계획이다.

▲ 벌교여고에서 바리스타 교육중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벌교여고 학생들은 수능 이후 계획과 자신들의 요구에 대해 훨씬 명확하게 말했다. 벌교여고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학생들이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도록 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편이고, 한 달에 한번 지속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랬기 때문인지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훨씬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벌교여고 정홍윤 교사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내용을 제공해 줄 때 학생 스스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2007년 여수화양고등학교에서의 시도

‘유보할 수 없는’교육의 책무

유보할 수 없는 청춘의 시기를 살고 있는 고교생, 그들이 좀 더 자유롭고 끊임없이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학교와 학교 구성원들 중에서도 교사들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2007년 당시 화양고 한상준 교장은 수능 이후에도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길 희망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다. 지역사회단체와 지역 인재, 동문, 인력풀을 통한 다른 학교 교사, 대학과의 협조를 일구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역사회단체에서 수능 이후 고3들을 위해 개최하는 여러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합격한 대학의 신입생 사전 O/T에 보냈다. 또한 수능 이후 대학에서 파견하는 교수의 강의를 배정하여 아이들에게 예비 대학생으로서 대학생활을 준비하도록 했다. 타 학교의 교사를 초빙하여 강의하는 경우 효과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극단이나 놀이패 초청공연, 각종 체험학습, 반별 대항 체육 행사, 봉사활동, 추억 만들기 여행과 눈꽃 보기 위한 겨울 산행 등 학교 밖으로의 여정을 마련하였다.

학생들은 고등학교 시절 마지막에 풍성한 추억을 간직하고 졸업했다. 수능 이후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분들이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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