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인물]-독도사진작가 김종권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사진으로 알리는 사진가가 있다. 순천 출신의 김종권 작가다. 30 년간 산악사진과 독도 사진을 찍어 온 그는 순천시 월등면에 인접한 태안사 인근에서 폐교를 개조해 독도사진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월간 1천 2백 명 가량이 찾는다는 전시관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편집자주>


중학교 다니던 중에 고향을 떠났다. 그때는 밴드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간 그는 밴드생활을 잠시 했다. 드럼과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다. 곡성 전시관의 작은 찻집 안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찻집 한 귀퉁이에 설치된 드럼세트다. 아직도 반짝이는 드럼이 그가 지났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묵묵히 대변하고 있다.
 

 
 

서울 충무로에서 30년

30년 동안은 그에게 서울 충무로가 고향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충무로 이야기를 할 때는 눈빛이 유독 빛났다. “충무로에서 사진에 대해 많이 배웠죠. 고 김근원 선생 등 여러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분들에게 사진정신을 배웠어요. ‘충무양행’이라는 카메라 집을 드나들며 카메라의 기계적 지식도 얻었죠.”

|그는 20대 중반 여행안내원을 하면서 산악회를 운영했다. 그러던 중 사진에 입문했다. 직접 카메라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을 만큼 카메라에 대한 조예가 깊다. 자신이 만들었던 카메라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가 조심스럽게 꺼낸 자작카메라는 지금 볼 수 있는 카메라들과는 달리 보디가 크다. 철공소에 부탁해 만든 철판을 댄 보디에 렌즈만 기성제품을 장착해 만들었다. 이렇게 손수 만든 카메라로 산악의 풍경들을 촬영했다. 이 사진 가운데 일부는 아직도 액자에 끼워져 찻집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많이 찍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진은 독도와 관련된 것들이다.

 
▲ 김관장이 손수 만든 카메라
▲ 김관장이 사용하던 카메라 장비들.


독도와의 운명적 만남

그는 1992년 독도와 만나면서 사진작가로서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 독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이었다. 당시는 해운조합의 의뢰를 받아 137개의 섬을 촬영하러 다니던 중이었다. 울릉도에서 성인봉을 촬영하다 바다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시야에 독도가 들어왔다.
 

▲ 독도에서 가지고 온 돌과 김관장

그 때가 김 작가에게 운명의 순간이 됐다. “독도가 눈에 들어왔을 때 ‘언젠가는 독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독도에서 촬영하는 생각을 3년 동안 했습니다.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 독도가 있는데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꼭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거듭하던 그는 92년 독도를 처음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수많은 장면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성인봉 촬영 중 찍은 독도 사진은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독도’라는 콘셉트로 국제적으로 소개됐다고 한다.
 

▲ 조업중인 김성도 씨 등 독도에서 촬영한 자신의 사진에 대해 설명중이다.

1년에 한달은 독도에서

그는 92년 이후로 2013년까지 20 여 년 동안 한 해에 한 달씩은 독도에 머물렀다. 모두 합하면 1년이 넘는 시간을 독도에서 산 셈이다. 독도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대에 숙식을 의지했다. 독도의 유일한 주민인 김성도(76) 할아버지 부부의 신세도 많이 졌다. “새벽에 일출 사진을 찍으려면 일찍부터 배를 타고 ‘포인트’로 나가야 해요. 그럴 때면 할아버지를 졸라서 다녔죠. 다른 사람들 말은 안 들어 줘도 내말은 들어 줘요. 겨울에 사진 찍기가 참 어려운 일인데, 그 때도 도와줬어요.”

김 작가가 김성도 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깊은 인연 때문이었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그다. 그는 김성도 옹이 독도에 이주할 때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십시일반으로 어업용 목선을 선물했었다. 동판에 그 이름들을 새겨서 배에 붙였다. 지금은 그 목선이 이용되지 않는다. 접안이 불편해서 고무보트로 바뀌었다. 목선에 붙어 있던 그 동판은 곡성의 김 작가 전시관에 와 있다. 복도 한 편에 보관되어 전시장을 찾는 이들을 맞고 있다.
김성도 옹도 겨울이면 전시관을 방문한다고 한다. 독도에 대한 애정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 작가는 김 옹이 입던 티셔츠마저도 가져다 보관 전시중이다.

▲ 독도 주민 김성도씨가 입던 티셔츠

생활권은 이미 순천

김 작가는 2007년 곡성으로 내려와 현재의 사진 전시관을 열었다. 독도에서 사진촬영을 하던 중 돌풍에 넘어지며 머리를 크게 다친 직후였다. 스물 네 바늘을 꿰매는 큰 부상이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몸이 나으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고향인 순천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곡성으로 인도했다. “곡성에서 태안사 인근 폐교를 무상으로 사용하라고 제안했어요. 대안이 없었고, 고향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죠.”

▲ 곡성의 독도사진전시관. 2007년부터 곡성군의 지원을 받아 김 작가가 운영해 왔다.

하지만 김 작가는 아직도 순천에 가고 싶어 한다. 생활권도 순천이다. 순천에서 장도 보고, 병원도 가며, 친구들도 만난다. “순천에 전시관을 개관하게 되면 관광사업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독도에 대한 이야기들로 꾸며지면, 수학여행단을 위한 교육장소로도 명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삼척 등에서 제안이 있었지만, 고향으로 가고 싶어서 거절했어요.”

▲ 초기부터 드론으로 촬영해 온 김종권 작가는 요즘 순천 전경을 찍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고향 순천에 전시관을 열고 여생을 보내고 싶다. 10대에 떠나 산과 섬을 누빈 긴 여정을 고향의 바닷가에서 정리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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