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윤호
문학박사,교육공동체시민회의 상임대표

12월이 되면 기온이 차가와지면서 어깨가 움츠러든다. 흔히 12월의 편지는 ‘달랑 한 장 남은 카렌다의 흔들림’ 어쩌고로 시작하는 것만 봐도 사람들이 한 해가 가지는 것을 아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월에는 희망의 새해인사를 나누고, 꽃피는 봄에는 꽃향기에 취하면서 계절을 보낸다. 여름은 더위와 피서 이야기로 지내나 싶더니, 가을은 수확과 단풍이야기로 훌쩍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이제 메마른 낙엽 위에 눈이 내리는 겨울. 앙상한 나목을 바라보며,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나이테를 돌아보며 자아를 찾는다.

세모의 끝은 뾰쪽하다. 겨울 살갗에 닿으면 아프고, 눈 앞에 다가오면 얼른 피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겨울엔 세모 대신 동그라미 연필을 좋아한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잘 굴러가는 동그란 연필 말이다. 오늘은 코발트 색연필로, 연말연시의 반성과 다짐, 새 계획의 동그라미 꿈을 그리고 싶다.

첫째, 따뜻한 겨울을 꿈꾼다. 매스컴에서 요란하게 떠드는 행사 위주의 ‘불우이웃돕기’ 말고 따스함이 스미는 이웃 가족 찾기 말이다. 라면상자 쌓아놓고 사진 찍어 신문사에 보내는 행사. 김장김치 나누기, 연탄배달하기, 장학금 전하는 불우이웃돕기 한다며 사진 찍는 행사. 장시간 행사장에 불러다 놓고 단체장, 내빈 축사를 강제로 듣게 하는 행사에서 제발 벗어났으면 좋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의 품. 학교 책상 앞에서 공부해야 할 학생들의 조바심 나는 마음과 그들의 자존감 같은 것은 ‘나 몰라라’ 하는 행사는 하루 빨리 우리 주위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둘째, 연말 사회문화가 바뀌기를 소망한다. ‘망년회’ 라는 구호 대신 ‘송년회’가 대세를 이루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묵은해를 보내는 망각의 시간이 아니기를 바란다. 새해를 맞이하는 바람과 연결되는 시간이므로 자아성찰 즉 자기 반성과 계획의 시간이 되기를 염원한다. 흥청망청 술판으로 이어지는 ‘망년회’가 아니라, 오붓하고 세련된 갖가지 이벤트와 가족대화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 송년회가 이웃∙동료 간의 건전한 모임으로 변해가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최근에는 음악과 토크, 시와 노래, 좋은 영화 함께 보기 등 세련되고 재미있는 행사가 많아지고 있다.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해봐야겠다는 도전의식을 일깨운다. 굳이 돈 많이 드는 가족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 소박하고 단출하지만 정감 있고 따뜻함을 나누는 가족 송년회는 더 멋지지 않은가.

셋째, 문화는 취향에서 품격으로 자아실현을 이루는 중요한 발판이다. 세모와 세시에는 도서관이 붐비면 좋겠다. 부모들의 책읽기, 도서관에서 뒹구는 아이들과 오붓하게 함께 하는 부모들은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엄마∙아빠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책읽기는 아이들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이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고개 절레절레 흔드는 부모들이여,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기억하자. 영화관에서 가족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나오는 장면을 자주 보면 좋겠다. 온 가족이 장편소설 한 편을 두 시간만에 함께 읽으며 공감하는 게 영화이다. 남녀노소 공감대를 형성해주는 영화는 가족 사랑의 출발점이다. 음악회 티켓이 동나서, 표 구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는 현상이 그립다. 전시장의 행렬이 길었으면 좋겠다. 우리지역 연극이 무대 오를 때마다 ‘만석’ 푯말이 공연장 입구에 나붙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이 주인공도 되고, 조연이 되기도 하고, 연출가가 되기도 하여 ‘큐’ 사인을 자주 외칠 때 우리 아이는 비로소 문화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 우리지역의 공연장, 전시장, 영화관에는 아주 훌륭한 창작 예술품이 즐비하다. 다만 지금 어른들이 공연장, 전시장을 찾는 작은 용기가 부족할 뿐이다. 우리가 품격을 지닌 문화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내년이나 내일이 아니라 오늘 당장 문화 예술 작품을 찾아가는 작은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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