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규 시인

깊은 고요로부터 건져 올린 사랑으로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신지요? 2017년 한 해도 기울어 가네요. 사실은 새로운 매일 매일을 맞는 거겠지만 우리는 늘 아쉬움을 담아 무엇인가를 보낸다고 생각하지요. 우리의 몸도 늘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고 있지만 우리는 세포들이 쉼 없이 죽어 나가고 몸은 늙어만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이 물건을 ‘나’라고 하며 이기적으로 살고 있지요. 이기심이라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의 이런 부정성으로부터 오는 불안감 때문에 생기는 가여운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긍정성보다는 부정성이 더 많은 일상과 그런 일상의 생각들에 끌려다니는 ‘나’라는 허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나와 나의 삶터에서 우리가 원하는 ‘평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사람들 개개인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각자의 ‘평화’가 따로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이 통일되어도, 전 세계의 모든 핵이 사라진다 해도 그 개인이 원하는 평화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라는 요물 덩어리를 가지고 사는 인간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바로 ‘나’라는 감옥을 평생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이 감옥에 갇혀 사는 한 우리는 꽃의 진정한 향을 맡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평화는 본질에서 모든 것들의 평화와 같은 평화라는 것이 성현들께서 말한 진리입니다.

2017년은 유독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해입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말 폭탄 때문이기도 했지요. 그 누구도 공멸을 알면서 핵폭탄을 먼저 터뜨릴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한껏 고조된 불안과 위기감 속에서 보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웬만한 정치적 현안에는 무관심했던 서민들까지도 평화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습니다. 말 그대로 죽으면 끝이기 때문이지요. 그 죽음은 물론 개인의 이기적 사고의 한 부분이기도 해서, 결국 평화는 개인과 전체에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며 개인의 수행처럼 평화도 인류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꾸준히 만들고 또 만들어가는 노력의 과정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2017년,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매우 빛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 만들기 1000인 은빛 순례단’을 꾸려내자는 노인들의 실천적 행동입니다. 60대 이상 환갑을 넘긴 남녀 노인들 1000명이 함께 평화를 위해 전 국토를 걷는 시위를 하자는 것입니다. 고령화로 가는 길목에서 노인들의 사회적 역할의 폭이 한껏 신장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실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하고 할 일 없는 열외자 취급을 받아왔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그룹이고 모두는 아니겠지만 경제적으로도 다소 안정되고 가정으로부터도 일정 부분 자유로운, 사회활동가로서 매우 적합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수행하지 않더라도 세월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어느덧 흰머리가 올라오고 주변의 지인들이 죽어가는 세월을 살며 ‘무상’의 진리를 몸으로 알게 되고, 거울 속에서 젊음을 잃은 보잘것없는 늙은이를 보고 겸허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나이라는 것이 그저 늙음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노인들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나섰습니다. 12월 9일에 끝나는 4.16 청년순례가 서해안을 걸어 진도 팽목항까지 오면 그 뒤를 노인들이 이어 남해안과 동해안 그리고 DMZ를 따라 횡단하는 순례를 해서 한반도의 남한 둘레길을 완성하겠다는 평화순례입니다.

‘평화’는 인류사 속에서 어느 시대에나 있어온 중요한 화두의 하나였습니다. 사회적 평화를 명분으로 숱한 전쟁들이 있었고, 개인의 절대 평화를 찾는 것이 생명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 한반도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 평화입니다. 이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실천적 현실 삶을 보여주는 ‘은빛 평화 순례단’에 많은 호응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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