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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양현정 조합원  |  kleg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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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승인 2017.12.01  09: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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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모든 사람이 누구나 똑같이 신에게 받은 선물이 있다. 그 누구도 더 받거나 덜 받지 않는, 매우 소중하지만, 평생 공짜로 받는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유독 시험에 약했던 나는 큰 시험을 보기 전날이면 부질없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에게 한 시간만 더 있다면 좋겠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야속한 내일은 반드시 꼭 제시간에 돌아왔었다.

‘한 시간만 더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만약에 일주일이라는 공짜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기적일까? 지난 11월 15일에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어 11월 23일 목요일에 실시되었다. 수능이 시행된 지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에게 한 시간만 더 있다면, 나에게 일주일만 더 있다면,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시험을 비껴갈 수 있을까?
 

   
▲ 신은수

신은수 (창평고 3학년)

순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순천의 상위권 학생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유행처럼 다른 지역의 우수학교를 찾아 진학한다. 은수도 버티기 힘들다던 스파르타식 고교 기숙 생활 3년을 꼬박 채웠다.

은수의 일과
5:45 기상/ 점호 ▷ 6:30 식사 ▷ 7:30 등교 ▷ 수업 ▷ 점심식사 ▷ 수업 ▷ 저녁식사 ▷ 자율학습 ▷ 12:00 취침 / 점호까지 자유시간은 없다. 타인이 정해준 시간표대로 움직였다. 휴대폰은 사용금지가 원칙이다. 학교에는 공중전화가 있고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카드를 사용했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 3년 동안 인기 있는 걸 그룹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19세기 교실에서 공부하는 21세기 아이였다. 수능을 마치고 가장 처음 내뱉은 말은 “엄마 휴대폰 사주세요.”였다. 속으로는 “아! 드디어 끝났다. 망했다. 재수각 이다” 하지만 재수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8월에 사관학교시험을 보았는데 신체검사에서 체력점수미달로 불합격을 했다. 그 일로 팔굽혀펴기가 수학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수시로 1차 합격한 학교에 내일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 최종발표가 마무리 될 때까지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할 것 같지만 가장 좋은 것은 이제 기상 점호가 없다는 것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싶다.

 

   
▲ 김수민

김수민 (재수생)

수민이는 재수를 했다. 작년에 수능 결과가 좋지 않아서 원하던 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워 고민 끝에 재수를 결정했다.

재수를 하는 동안 서울의 기숙학원에 등록했고 겨우 두 달에 한 번 휴가를 받았는데 올해 겨우 다섯 번 집에 온 것 같다.

기숙학원의 일과
6:30 기상/체조 ▷ 7:00 아침식사 ▷ 8:30 국영수 TEST ▷ 9:00 오전수업 ▷ 12:30 점심식사 ▷ 1:30 오후수업 ▷ 5:30 저녁식사 ▷ 6:30 저녁수업 ▷ 10:00 간식시간 ▷ 10:30 13교시 수업 ▷ 12:00 샤워 후 점호 ▷ 12:30 개별시간

13교시 수업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짓누른다. 기숙학원에서는 외부와 연락을 전혀 할 수 없다. 부모님도 사감 선생님을 통해서 연락할 수 있다. 비가 와도 태풍이 와도 이곳은 변하지 않는다.

일과를 시작하며 유일하게 상상할 수 있는 오늘의 새로운 주제는 식판에 놓인 반찬이었다. 학원은 월간 식단표를 미리 공지한다. 반찬으로 그렇게 많은 농담과 낙서를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발견했다. 작년에 재수를 결정하며 부모님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나에게 만약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그 때 한 시간만 더 있었다면 수학을 잘 풀 수 있었을 텐데.”라며 잘해보겠다고 설득했었다. 하지만 스무 살의 사계절을  기숙학원에서 보낸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기숙학원을 퇴소하면서 엄마와  많이 울었다. 시험이 끝나고 머리를 밝은색으로 염색했다. 빨간 립스틱도 발라보았다. 짧은 치마도 사고 싶다.

 

   
▲ 황희웅

황희웅 (광영고 3학년)
희웅이는 장학금을 받는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하던 일에 문제가 생긴 이후로 엄마와 살게 되었다. 엄마 혼자 부정확한 수입으로 힘들게 살림을 꾸리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희웅이에게는 방황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수능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수시로 몇몇 학교에 합격을 해둔 상황이지만 마음에 정해진 곳이 딱 한 곳 있다. 진주에 있는 연암공업대학이다. 입학하자마자 바로 입대할 생각이다. 엄마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

2년 후에 전역하고 나면 지금보다는 경제적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희웅이가 수능이 끝나자마자 바로 시작한 일은 식당 아르바이트이다. 첫날 불판에 손가락을 데었지만 시급이 8000원이라 참았다. 돈이 모이면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할 것이다. 운전병으로 입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빨리 2년이 지나면 좋겠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의 표정은 홀가분하고 들뜬 모습이다. 제각각의 사연들이 있지만 그래도 끝이 있었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기다린다. 오지 않기를 바라던 날은 기어이 왔고 빨리 지나가면 좋을 날은 더디게 가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수능이 넘어야 할 첫 번째 큰 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지나보면 그것이 단지 작은 봉우리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선물로 받은 내일이 있다. 빛나는 청춘을 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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