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의·삶·의·현·장 - 중앙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원 신미자씨

물소리, 식기 부딪히는 소리, 도마소리, 식용유 지글거리는 소리, 연기 내뿜는 소리, 웃음소리. 급식실 신미자 조리원에게 늘 귓전에 맴도는 소리다. 8시에 출근하여 식재료 준비부터 하루 일과를 끝내기까지 학교 급식실은 늘 분주한 일상이 반복된다.

▲ 아이들 보며 웃는다는 순천중앙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원 신미자씨. 올해로 11년 조리원 일을 하며 힘들 때도 많았지만 일이 즐겁고 요리가 행복이다.
올해로 11년차 일을 하고 있다는 조리원 신미자씨(49세).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이들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순천중앙초등학교 급식실에 취직하여 꽃다운 청춘을 보내고 있다.

“처음 내가 학교 왔을 때는 교실배식을 했어. 학생수가 1200여명 되었는데 그 많은 수를 급식실에서 다 해결할 수가 없으니까 교실마다 밥을 가져다 줘. 그때는 엘리베이터처럼 생긴 곳에 학생수에 맞춰 식사를 챙겨 올려주면 반별로 이동하면서 배식해. 식사를 싣고 조용히 밀고 가면 애들이 안 봐야는데 우리가 보이면 반가워서 인사까지 해. 그럼 선생님이 혼내고 그랬어. 그렇게 한 2년 정도 교실배식을 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애. 교실배식을 안하니까 확실히 덜 힘들고 너무 좋더라고.”

▲ 다이어트를 이유로 아이들의 먹는 양이 적다. 살이야 조금 찌면 어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은 맘껏 먹고 많이 컸으면 좋겠어.
10년 사이 학생 수가 절반이상 줄어들어서 지금은 500여명의 식사를 준비한다. 시간이 흘러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변함이 없다. 고기가 나오면 잘 먹고 된장국이나 나물은 싫어한다. 칼로리를 따져가며 고민고민 식단을 준비하는 마음은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신미자 조리원은 안타깝다.

“아이들이 예전보다 많이 안 먹어. 다이어트 해야 한다고.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고 더 가져가라고 말하지만 조금씩밖에 안 가져가. 날씬한 아이들까지도 살찐다고 잘 먹지 않는다니까. 지금 잘 안 먹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텐데 안타까워. 아이들에게 아무리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고 살이 쪄도 좋으니 지금은 맘껏 먹고 키가 많이 컸으면 좋겠어.”

건강보다는 겉모습에 신경 쓰는 ‘외모지상주의’, ‘날씬병’은 한참 커야하는 아이들에게까지 확산이 되고 있다. 아이들의 식단은 비만과 영양부족을 충분히 고려하여 짜여지지만 아이들이 먹게 하는 건 또 다른 고민일 것이다.


수당이 뭔지도 몰랐다


처음 급식실 일을 할 때는 월급이 40만원 가량 되었다. 몇 년 동안 오르지도 않았고 올라봐야 300원이나 500원 오르는 수준에 그쳤다.

“고생은 말도 못하게 했는데 받는 건 고작 그 정도였어. 초창기 언니들이 엄청 고생 고생 다 했제. 힘들고 돈도 작았지만 엄마들이 어디 가서 할 일이 있어야지. 힘들어서 그만 두고 싶다가도 참고 하다보면 방학이 와. 방학 때 좀 쉬다보면 다시 또 일을 하게 되고. 방학이 있으니 했지 안 그랬으면 못 했을 것 같애. 그나마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

그나마 많이 좋아졌다는 지금 신미자 씨의 월급은 4대 보험을 제외하고 120만원 가량 받는다. 11년 근속수당, 년차주차수당, 가족수당이 포함된 월급이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학자금도 있다며 그것이 어디냐고 한다.

학교비정규직 종사자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당이란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살았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우가 다른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야했다. 지금이라고 해서 많이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전에는 학생 수가 줄어서 감원해야 하면 무조건 누군가는 나가야했는데 지금은 인원이 부족한 다른 학교로 보내줘. 그나마 좋아진 것이지. 그래도 근속수당이 생겼지만 그것도 한계년도가 정해져서 오래 근무한다고 해서 수당이 계속 오르는 게 아니여. 그래서 우리들이 호봉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야.”

지난 주말 서울에서 있었던 학교비정규직 집회에 다녀왔다고 한다. 극심한 차별이 호봉제가 되면 조금은 나아질 것 같다는 것이 신미자 조리원의 생각이다. 차별이 없는 세상, 일한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 이 당연한 세상이 신미자 조리원이 목소리 높여 외치는 그토록 희망하는 세상이다.

▲ 함께 일하다보면 실수도 있고, 짜증나는 일도 있겠지만 사람인지라 일을 하다보면 있을 수 있는 일. 퇴근할 때는 서로 웃고 나가자! 서로 보듬어주는 동료가 있으니 기쁨이다.
1년 전 신미자 조리원은 뜨거운 물에 다리 화상을 입었다. 아직도 정강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검붉은 화상자국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 달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했지만 깊게 자리잡은 화상자국은 평생 안고 가야할 몸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급식실 조리원들에게 화상은 늘상 있는 일이다. 뜨거운 불 옆에서 팔팔 끓어오르는 물, 지글지글한 기름, 온 몸을 휘감는 열 속에 있지만 위험수당 같은 건 없다. 사고가 나면 산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로 만족해야 한다.


아이들 보며 웃는다


“맛있게 요리해서 잘 차려놓은 거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해져.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거 보면 기분이 좋아. 아이들 보면서 웃는다니까. 음식은 행복인 것 같애. 처음에는 50살까지만 다니자했는데 50을 눈앞에 둔 지금은 내가 그만두면 무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 순천중앙초등학교 급식실. 아이들이 착하고 인사도 잘한다. 이쁘다.
급식이 생활이 되어버린 신미자 조리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고 행복이라고 여기고 있다. 텔레비전을 봐도 요리프로를 보게 되고, 서점을 가도 요리책을 산다. 늘 하는 일이지만 좀더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고 항상 공부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후배가 조리법을 물어와도 대답을 잘 해줄 수가 있다고 한다. 10년을 일해도, 20년을 일해도 임금이나 직급이 오르지 않는 비정규직 조리원이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은 크다. 급식은 신미자 조리원의 생활이고 기쁨이니까.

일하다보면 지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일을 다 끝낸 후 씻고서 잠시 휴게실에서 쉬다보면 힘들었던 거 다 잊어버리게 된다.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어 행복하다는 신미자 조리원은 오늘도 피곤했던 하루를 요리책 위에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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