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일은 학생의 날이다. 88회를 맞는 동안 이 기념일은 부침을 반복해왔다. 현직 여자중학교의 교사인 필자가 오늘날 학생의 날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짚어보았다.<편집자 주>


다시 학생의 날을 생각하며…

▲ 신선식
    순천여중교사

2017년 11월 3일, 순천여중 교문 앞.
십대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따뜻한 핫초코와 몽쉘을 나누어 준다. 차가워지는 날씨와 아침을 못 먹고 온 학생들에 대한 배려이다. 교문 앞에는 학생의 날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선생님들은 ‘오늘은 학생의 날이야. 축하해’라고 하며 하이 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프리허그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의 표정은 어색하기만 하다.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 학생의 날인데 오늘 안 쉬어요?’라는 천진난만한 질문을 한다.

독립의지를 기념했던 학생의 날 제정
1919년 거족적인 3‧1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는 일본의 소위 ‘문화통치’로 우리민족을 분열시키고자 하였다. 안타깝게도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일본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나마 힘들었던 민족의 역량이 분산되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학생들은 성진회 등 독서클럽을 조직하여 독립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이런 노력은 1929년 11월, 광주에서 학생들의 조직적인 항일독립운동으로 결실을 맺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149개 학교, 5만 4천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였다. 학생들은 ‘문화통치’라는 일본의 분열책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민족의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정부에서는 이런 학생들의 독립의지를 인정하여 1953년 학생의 날을 지정하였다. 그러나 정권의 성격에 따라 학생의 날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56년에는 ‘반공학생의 날’로 바뀌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학생들은 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1973년, 박정희 정권은 민주화 운동의 계기가 되는 학생의 날을 폐지하였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1984년 학생의 날은 다시 지정되었다.

2017년 11월 3일, 88주년이 되는 학생의 날! 대학교 다닐 때 학생의 날만 되면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위를 했던 기억이 난다. 11월 3일은 단순한 날이 아닌 선배 학생들의 독립의지, 민주화 의지를 되돌아보는 날이었다. 자유롭게 학생의 날 행사를 해 보는 것이 바람이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중학교에서도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학생의 날 행사를 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행복부터 찾아 주는 학생의 날 되길
민주화된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던 학창시절의 꿈은 남아 있을까?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져 고통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은 늘어만 가고 있다. 학생들은 입시 문제로, 취업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학생들은 ‘삶을 위한 배움’보다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부’를 강요받고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선배 학생들의 의지를 되돌아보라 말할 수 있을까? 학생의 날 최루탄 가스에 눈물 흘리며 뛰어다니던 젊은 날의 꿈은 남아 있는 것일까? 그 꿈이 남아 있다면 아이들의 행복부터 찾아 주는 것이 학생의 날의 의미를 되살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학생의 날 쉬면 안돼요?’ 공부에 지친 학생의 말이 귓가를 맴도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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