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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마을에서 엿 만드는 ‘야문네’ 최정자 씨
양현정 조합원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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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호] 승인 2017.11.02  19: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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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자 어머니(67세 주암면 구산마을)친정에서 배웠던 조청 만드는 기술로 이웃들과 함께 마을 기업을 만들어 은퇴 없는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은퇴는 언제하면 좋을까?
일반적으로 60세를 전후로 은퇴를 하고 있다. 60살이면 많은 나이일까? 예전에는 60세 생일이면 회갑잔치를 했었는데 요즘은 보기 드문 일이다. 불과 2~30여 년 전과 비교한 지금의 60살은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다. 하지만 통념속의 은퇴는 여전히 60살이다.

최근에 한 조사에서 ‘은퇴한 후 가장 후회한 6가지’라는 주제로 조사를 했는데 그중 첫 번째 답이 ‘너무 일찍 은퇴했다.’ 라고 한다. 후회의 이유는 많지만 결국 재정의 문제가 제일 클 것이다.

안정적인 재정 상태라고 해도, 만약 은퇴 후에 그저 책을 읽거나 TV를 보고 동네 산책하는 것으로 보내는 생활이 지속된다면? 은퇴가 없는 삶이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장터에 갔다가 조청과 엿을 팔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새댁 엿기름 사가요. 엿기름” 뒤돌아 눈이 마주치자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셨다. “우짜끄나 ! 엿기름 엇따 쓰는지 모르지야? 그럼 조청이나 사가소.” 새댁이란 말에 기분이 좋아 엿가락 몇 봉지를 사고 좌판에 함께 앉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곡성에서 온 스물셋 새댁
곡성에서 스물셋에 얼굴 한 번도 본적 없는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부모님이 가라 하니 그저 가야 하나보다 했다. 시집을 와서 보니 문전 답 겨우 있는 가난한 집이었다. 그래도 시집왔으니 살아봐야지. 농사철엔 논으로 밭으로 해지는 줄도 모르고 일했고 겨울철엔 친정에서 배운 솜씨로 조청과 엿을 만들어 여기저기 내다 팔았었다.

그 시절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 어려워서 그렇게 사는 거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남편은 순한 사람이었다. 평생 화를 내본 적이 없다.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으니 정이 쌓이면  얼마나 쌓였겄어? 그래도 2남 2녀 자식 낳아 갈치고 키우고 여우고 애 썼재. 그냥 살았재. ”

착한 남편은 먼저 가버렸다
살만하니 병이든 남편은 호사도 못 누려보고 11년 전에 먼저 가버렸다. 먼저 가려고 그리 잘해줬나 보다. 자식들은 다 객지에 있고 둘이 내외하던 시골집에서 갑자기 남편이 안 보이니 마음에 병이 찾아왔다. 괜히 심장이 뜀박질하고 헛것이 보여 놀라기를 여러 번. 119에 실려가기도 했다. 한 3년을 이유도 없이 자주 아팠는데 서서히 나아갔다. 외로운 마음의 병이었나 보다. 남편 없이 농사일 꾸려가며 고생한 것은 말로 다할 수가 없지만 원망은 안 한다. 살면서 고생만하다 간, 허튼짓 한번 안 하고 뭣 한 사람들처럼 술도 안 마셨던 양반이다. 구산마을은 작은 마을이라 위 아랫집 서로 다 아는 처지들이다. 이웃들이 피붙이처럼 도와줘서 이겨낸 것 같다.
 

   
▲ 구산마을 영농조합 법인 대표, 조연귀 아버님. 올해 70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힘이 넘치신다. 최정자 어머님이 야물어서 뭐든지 잘 한다고 칭찬을 계속 하셨다. 야물다는‘똑똑하다, 총명하다, 알뜰하다’라는 뜻일까?

마을 기업 일하는 예순일곱 청춘
이웃들하고 농한기에는 조청과 엿을 만들어 팔기를 몇 년 했는데 주변에서 시설허가를 내어보라고 했다. 마을 기업을 만들면 시에서 시설자금을 보조해주고 판매하기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28가구인 마을에서 각각 백만 원씩 투자를 하고 시민소통과의 지원을 받아 약 5000만 원의 자금으로 마을기업을 만들었다. ‘주암 구산마을 전통식품 영농조합법인’의 이름으로 올해 6월에 창립을 했는데 우리끼리 대표도 뽑고 이사진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직원이라 최고령 직원은 86살이다. 여든 넘은 할머니가 회사 다닌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같이 쌀을 불려서 시루에 찌고 발효시킨 후 만든 꼬두밥으로 여러 상품을 만든다. 대부분 기계보다는 수작업이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주말이면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홍보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으러 다니는 재미로 산다.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한테 부담 안 주고 내 쓸 것은 계속 벌 수 있으니 좋다. 우리 마을에는 은퇴라는 말이 없다. 몸만 움직일 수 있으면 일할 수 있는 마을기업이 있으니 걱정이 없다. 예순 일곱이면 우리 마을에서는 아직 청춘이다.
 

   
▲ 마을 주민이 모두 투자가인 동시에 직원이다. 주말이면 로컬푸드 행사나 지역 축제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제품 홍보를 한다. 가족 같은 벗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노후를 보내고 있다.

눈 뜨면 할일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고…
최정자 어머니는 요즘 마을기업 운영으로 신이 난다고 하셨다. 젊을 때는 도시에서 월급 받는 사람들이 부러운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눈 뜨면 할일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고 찾아갈 곳이 있어서 좋다. “아버님은 아직도 그리우세요?”하고 여쭤봤더니 손사래를 치셨다.

“아니, 아니여. 울 아저씨는 젊어서 갔고 나는 인자 할머니인디 다시 만나면 얼굴도 몰라볼 거네.” 지금 혼자여서 더 좋다고 하신다.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니 솔직히 더 좋다고 하셨다. 이웃에 어머님들이 남편 눈치 보느라 외출도 제대로 못하는 데 본인은 마음껏 누리고 있다며 웃으셨다.

가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막연하게 은퇴를 휴식으로 연결지었었는데 그러기에는 우리의 수명이 너무 길어졌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최정자 어머님처럼 엿가락 늘리는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주말에는 주암 구산마을을 찾아가서 한 수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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