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 글은 ‘사랑어린학교’ 8,9학년 아이들이 관옥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시간에 나눈 이야기를 채록하여 부분 정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네 스승으로 만들 수 있어

할아버지가 얘길 하나 해줄게. 그 얘길 잘 듣고 너희들의 소감을 얘기해줘.

일본 얘기야. 젊은이 하나가 사무라이(무사)가 되겠다고 선생을 찾아와 그 집에 들어가 훈련을 받아. 세월이 흘러 젊은이가 건강한 무사가 됐어. 그런데 불행하게도 선생의 젊은 아내와 정분이 났단 말이야. 그래서 서로 몰래 만나게 되었어. 그러다가 발각이 되었어. 스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 그니까 제자는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스승이 자고 있는 사이에 스승을 죽이고 부인과 함께 도망을 간단 말이야. 비참한 얘기지.

그런데 그 집에 아들이 있어. 그 아들은 평생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본사람들 복수하는 얘기 많잖아. ‘나는 반드시 그놈을 잡아서 아버지 복수를 할거야’ 그러면서 실력을 연마하는 거야.

한편 두 사람은 도망을 갔는데 얼마 못살고 헤어졌어. 여자는 여자대로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남자는 떠돌아다니며 사는 거야. 그런데 자기의 실수를 늘 기억하고 꿈에 자꾸만 나타나 괴롭고 사는 게 힘들어.

그러던 차에 어느 한적한 마을에 가서 살게 됐는데, 그 마을은 다 좋은데 장보러 가려면 높고 험한 산이 있어서 그 산을 올라갔다 내려갈 수가 없어. 그래서 그 산을 빙 돌아가다 보니 하루 종일 걸리는 거야. 불편해. 그래서 제자가 아, 내가 지난날의 잘못을 저질렀고 죄를 많이 졌으니 죄값을 치르는 셈 치고 좋은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터널을, 굴을 뚫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장보러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좋을 것이다 생각한 거지.

그래서 삽과 곡괭이를 사서 굴을 파기 시작하는 거야. 다들 비웃었지. 혼자서 될법한 일이냐. 그래도 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갚는 뜻으로 해야겠다 생각하고 밤낮으로 뚫는 거야. 한 몇 년 걸렸겠지. 많이 늙었지.

그 사이에 아들은 자라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버지의 원수를 찾는 거야. 찾다 찾다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와서 만났어. 사무라이가 스승의 아들한테 무릎을 꿇고 네가 언젠가 나타날 줄 알았다. 때가 되었으면 언제든지 너는 내 목을 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 이러이러해서 굴을 뚫고 있는 중인데 이 터널을 완성할 때까지만 참아줄 수 있겠냐? 다 마치면 그때 목을 쳐라. 아들이 가만히 생각하니 바쁠 것도 없고 도망갈 것도 아니고 해서 그렇게 해라 하고 기다리는 거야. 사무라이는 밤낮으로 혼자서 굴을 파는거야.

아들이 가만 생각하니 저걸 빨리 끝내야 복수를 마치고 돌아갈 텐데 내가 도와주면 빨리 끝내겠다 생각했어. 그 다음엔 둘이 같이 가서 매일 굴을 파는 거야. 어느 날 드디어 뻥하고 뚫렸단 말이야. 그러니까 다 됐다. 이제는 끝났다. 지금까지 기다려줘서 고맙다. 때가 되었으니 이제는 복수를 하라며 목을 내밀어. 아들이 칼을 들었다가 땅에 던지면서 하는 말이, ‘원수는 죽일 수 있지만 스승은 죽일 수가 없다’ 그랬대. 일본에 있는 민담이야.

얘길 들었으니 소감이 있어야 될 거 아니야? 떠오르는 생각을 얘기하면 돼. 느낌이나 생각 아무거나.

(다훈) 스승은 죽일 수 없다고 했는데 스승한테도 배울 게 있지만 원수가 생기면 배우는 게 있을 것 같아서 원수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멋지네. 살다가 어떤 사람도 네 스승으로 만들 수 있어. 공자님 말씀에 三人行이면 必有我師라.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얘기야. 세 사람 중의 하나는 나야. 곧 다 나의 스승이다. 이 세상을 반듯하게 가는 사람이 있지? 그럼 나도 그렇게 걸어야겠다. 그럼 나의 스승이지. 또 비틀비틀 걸어가는 사람이 있어. 그럼 아, 나는 저렇게 걷지 말아야겠다. 그럼 나의 스승이지. 모든 사람을 나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지.

(은혁) 마지막에 이해가 안되는 데 맨 처음 스승은 뭔가요? 자기 원수를 찾아갔잖아요.

굴을 파면서 도와주다 보니까 원수한테 배운 거지. 사람이 산다는 게 무엇인가. 그럼 그때부터 스승인거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해. 이제 와서 내가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많이 있을지 몰라. 그러나 내가 용서해줄 사람은 없어. 왜 그럴까? 나를 해친 사람이 없더라고. 나를 해쳤던 사람도 보니까 나를 가르쳤어. 스승이란 말이지. 그렇게 바뀌는 거야. 여기서 바뀐 거는 둘 다 바뀌었어. 그지? 처음에 그 사람도 자기 스승을 죽였잖아.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니? 땅굴을 파면서 자기도 모르게 스승이 되는 거지.

정리: 이재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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