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사상계』로 등단한 후 귀향

지난 10월19일 삼산도서관 3층에서는 제 14회 순천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순천문학상은 순천시민들이 조직한 문학 동아리가 제정한 상이다. 소도시에서 문학상이 제정되어 유지되는 예는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조정래 씨 등이 이 상을 수상했다. 이번 행사는 매우 특별했다.
수상자 허의녕 시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1960년 4월 어느 날 서울의 모 병원에 입원 중이던 허의녕 씨는 돌연한 총소리에 깜작 놀랐다. 이윽고 젊은 대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병실로 실려와 자기 옆 병상에 누웠다. 싱싱한 꽃송이 같은 젊은 학생들이 숨을 거두기도 했다. 그 방에는 누군가가 병문안을 오면서 가져다 둔 베고니아꽃이 빨갛게 피어있었다. 허의녕 씨의 뇌리에는 학생들의 핏방울과 베고니아꽃의 붉은 색깔이 겹쳤다.
 

▲ 고 허의녕 시인

그는 아픈 몸을 추스르며 한 편의 시를 써서 다음해 『사상계』로 보냈다. 당시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이 잡지에 등단한다는 것은 ‘문단 고시’의 합격이나 다름없었다. 심사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조지훈 시인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시를 썼다.”고 칭찬했으며 많은 문인들이 입을 모아 4.19 혁명시의 백미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그는 등단 후 제대하여 고향 순천시 대대동으로 내려왔고, 오이 농사를 짓느라고 시집을 낼 수 없었다. 초창기 순천문학 동우회에 참여하기도 했던 허의녕 시인은 순천문학상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었으나 시집이 없어 시상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순천문학회 전전 회장 양동식 선생이 최근 허의녕 시인의 원고를 탈취(?)하여 시집을 냈고, 문학회는 문학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 순천문학회지와 고허의녕 시인 유고시집

그러나 원고를 정리하던 도중 시인은 돌연히 중태에 빠지더니 며칠 후 영면하고 말았다. 이 번 허의녕 시인의 시 <4월에 알아진 베고니아꽃>은 결국 유고시집이 되고 말았다. 이 시집은 순천시, 순천시의회(허유인 의원), 유가족, 순천문학회(김수자 회장)의 든든한 네 기둥 위에 세워진 커다란 꽃다발이다. 문학상은 허의녕 시인의 장남 영준 씨가 대신 받았으며 100여명에 달하는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 제 14회 순천문학상은 허의녕 시인의 장남 영준 씨가 대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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