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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지역 최초 ‘여자근로정신대’ 역사 교육“잊혀진 피해자들, 제대로 조명해야”
김현주 시민기자  |  khj@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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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호] 승인 2017.10.19  10: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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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중학교 3학년과 근로정신대 교육을 진행하는 이국언 상임대표

10월 11일 순천 신흥중학교에서 전남지역 최초로 ‘여자근로정신대’ 역사교육이 진행되었다. 전라남도는 올해 처음으로 ‘여자근로정신대’ 시범교육 예산을 편성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함께 역사교육을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상임대표를 비롯한 3명의 강사가 신흥중학교 3학년 5개 반 교육을 진행한 것이다.

대다수 학생들이 ‘여자근로정신대’에 대해 생소해 했으나, 45분 교육을 진행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미성년 여성인력이라는 사실을 알아갔다. 교육은 일제 강점기 당시의 역사적 현실과 생존해 계신 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민들의 활동영상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교육은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주)의 사죄와 피해배상 촉구 서명운동’으로 마무리되었다.

신흥중학교를 시작으로 한 ‘여자근로정신대’ 역사교육은 순천별량중학교(24일), 순천여고(25일)에서도 이뤄질 계획이다. 이국언 상임대표는 “올해 시범교육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전라남도와 전라남도교육청 차원으로 교육이 확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인/터/뷰-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상임대표
 

   
▲ 이국언 상임대표

▶ 전남지역에서 첫 교육이라 의미가 남다를텐데요.

그동안 광주시교육청 등을 통해 광주지역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수업이 이뤄져왔지만 정작 더 필요했던 전남지역 수업은 미처 손이 잘 닿지 않았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좀 더 많은 지역과 학교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사실 행정구역상 광주가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의 생활권이었고, 실제 일제 말기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사례도 광주를 비롯해 목포, 나주, 순천, 여수 등 전남지역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2009년 3월 광주에서 결성된 시민단체로 올해 8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사실 부끄러움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오랫동안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외롭게 명예회복 투쟁을 벌여왔는데, 이런 사실이 있는지조차 몰랐고  아무런 역할을 못해왔다는 반성이었습니다.

그동안 근로정신대 문제를 우리 사회에 이슈화시키기 위해 시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일본기업을 상대로 소송과 일제강점기 청소년 역사교육 등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일본내 평화운동 단체들과의 연대활동과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012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을 피고로 모두 3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왔습니다. 3건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원고는 모두 11명으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는 8명, 유족이 참여한 경우는 3명입니다.

이 중 가장 먼저 소송인이 제기한 1차 소송은 광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한 뒤 현재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머지 2차, 3차 소송은 지난 8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승소한 뒤 미쓰비시측의 항소로 광주고등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항소심 소송에서 미쓰비시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 2015년 6월 24일 시민보고대회를 하고 있다.(사진제공.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 할머니들의 삶과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분들의 현황은?
고작 14~15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들은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임금 한 푼 없이 중노동에 혹사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아픔은 광복 후 정작 고국에 돌아온 뒤였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에 대한 끔찍한 기억들이 많은데다 봉건적 구습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을 때입니다. 일본에 다녀왔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일본군 ‘위안부’로 잘못 이해했던 것이죠. 그로 인해 결혼도 힘들었고, 어렵게 가정을 꾸렸더라도 행복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다 왔다며 파혼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현재 광주에는 15명, 전남도내에는 20여명이 넘는 분들이 생존해 계시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전남지역, 특히 순천지역에도 생존해계신 할머니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순천도 주요 동원지 중의 한 곳입니다. 특히 서울에 거주하고 계시는 김정주 할머니의 경우 순천남초등학교 졸업식을 얼마 앞두고 졸업장도 손에 쥐어보지 못한 채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순천남초등학교 출신 세 분의 피해자들이 현재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계십니다. 2016년 1월 조사에 의하면 그 외에도 2명의 피해자가 순천에 거주하고 계신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지금도 대다수 국민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근로정신대’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잊혀진 존재이고, 제대로 된 조명 한 번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72년 전 민족수난기에 우리지역에도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과연 몇 명이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지역 할머니들이 노구를 무릅쓰고 명예회복 투쟁에 나서고 있는 사실을 어느 누가 알고 있습니까? 이런 사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현실에서 일본에 사죄만 요구하는 건 또 얼마나 겸연쩍은 일입니까?

교과서나 역사책에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픔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늦었지만 멀리서 역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 우리지역 사례를 통해 역사와 대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통한의 역사를 발굴, 기록하고, 교육하는 것이 그 출발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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