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 글은 ‘사랑어린학교’ 8,9학년 아이들이 관옥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시간에 나눈 이야기를 채록하여 부분 정리한 것입니다.



 Task, 하루 힘을 남겨두지 않고

사람이 가장 비참한 게 뭘까? 사업이 망하는거? 그런거 아니야. 내 숨이 마지막 거두는 순간, 그때 의식으로 내가 정말 헛살았구나 이런 말밖에 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게 진짜 인간이 비참할 것 같아.

반대로 마지막 자기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아쉬울 것 없다, 나 충분히 잘 살았다, 겁낼 것 없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정말 잘 산 사람이라고 생각해. 누구에게나 마지막 순간은 오게 되어 있어. 너희들이라고 피해가는거 아니야. 그날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 사회에 큰 공헌이 되지 못했을지 몰라도 사람들을 해치진 않았다. 윤동주 시에 나오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다 이루었다’ 그리고 죽었어. 내가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잘 산 사람이라고 생각해. 무슨 업적을 남겼나, 무슨 일을 했나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지금 여기 와서 마음공부를 하는 게 도대체 뭐하는 건가? 이 마음공부를 왜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해. 굳이 얘기하면 두 가지 마음밖에 없어. 하나는 여기 내가 믿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한테 이런 임무를, 이 자리를 허락하신 것, 그건 나에게 맡겨진 일이야. 너희들 만나서 공부하고 얘기하고, 그것이 나에게는 내 일이야. 이걸 영어로는 task라고 한다. 들어봤니?

task란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work라는 말과 달라. work는 ‘일’이야. 그냥 일. 그건 제가 좋아서 하던 누가 시켜서 하던 다 일(work)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어. task도 사전 찾아보면 ‘일’이라고 나와. 그런데 다시 한 번 찾아볼래? 임무라는 말이 맨 먼저 나오지? 임무(任務)야. 무
(務)는 일이라는 뜻이야. 임(任)은 그게 task의 의미야. 이게 뭐냐면 맡겨졌다는 뜻이야. ‘담임선생님’ 하면 그 반은 그 선생님한테 맡겨졌다는 뜻이야. 임무는 그냥 일이 아니라 너한테 맡겨진 일이야. 그게 task야.

할아버지가 너희들한테 온 것이 task라고 생각해. 하늘이 나한테 이 일을 맡기셨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왔어. 난 지금 내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너희들도 나에게 소중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미안하지만 그보다 내가 나한테 더 중요해. 반대로 너희들한테는 너희들 자신이 더 중요해. 나에게 주신 task(임무)인데, 감당하되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감당하는거야. 

이 task를 내가 감당하지 않는다면, 감당하되 대충대충 한다면, 그게 내가 내 인생을 개떡으로 만드는거야. 나한테 나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냐? 내가 오늘 저녁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요만큼 기운이 남았으면 기운을 쓰는거야. 자기한테 맡겨진 일에, 나한테 맡겨진 기운을 다 쓰는거야.

할아버지는 소신이 있어. 오늘 쓸 수 있는 기운을 남겨놓고, 내일을 위해서 비축해 놓고 오늘 잠자리에 들고 싶지 않아. 나한테 오늘 주어진 에너지를 그날치는 다 쓰고 잠자리에 들고 싶은게 내 마음이야.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저축해두지 않아. 왜냐하면 나에게는 내일이 없어. 내일이라는 것은 내 머리 속에 있는 거지. 오늘 바로 너희들과 얘기하다 쓰러져 죽을 수 있는 거야. 그러므로 다음 시간을 위해서 지금 이 시간을 아껴두자, 내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은 옛날에 지웠어.

내가 존경하는 화가 한 분이 있어. 장욱진.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남긴 그림 중에 스스로 가장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진진묘’라는 그림이 있어. 그 그림이 뭐냐면 한 여자의 얼굴이야. 관음상의 얼굴인데 아내얼굴과 오버랩시켜서 그렸어. 한겨울 난방도 안되는 시골농가화실에서 사흘간 곡기를 끊고 그렸는데 돌아와선 크게 앓아누웠대. 그 양반이 늘 하는 말이, 나하고 같은 말이야,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나한테 주어진 힘을 다 쓰고 손가락 하나 들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졌을 때, 그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야.

언제 내 인생의 마지막이 올지 모르잖아. 언제오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다 봤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아쉽지 않다, 양심에 꺼릴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너희들이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나에게 주어진 task를 최선을 다해서 하는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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