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참 맛난 안주였다. 그 흔한 식당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으레 놓인 겉치레 안주가 아니었다. 언제부터 전국의 내로라하는 식당들은 표준화, 규격화된 ‘뻔한’ 맛을 보여준다. 그 고장의 독특한 향토 음식조차 전국화된 음식 맛을 내보이고 있다. 그런데 ‘절구통’이라는 이 막걸릿집은 주인아줌마의 너른 몸매만큼 깊고 넓은 순천의 맛을 지키고 있었다. 곁 반찬 하나하나 허툰 손맛이 아니다. 안주 맛에 한잔 두잔 꼴깍거리는 사이 밤이 깊었다. 막걸릿집 주인 부부의 바쁜 손놀림에는 문 닫고 쉬고 싶은 마음이 묻어 있었다.

“오늘은 이제 그만 접읍시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변이 왔다.

“고양이, 쥐 생각하지 마시고 술 더 마시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일없이 길 걷다 뒤통수를 맞은 듯 멍~했다. 내가 과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쉽지 않은 자리였고 올곧은 사람들이었다. 조금 더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 안다. 그렇지만 주인 부부와 우리는 고양이와 쥐의 관계도 아닐뿐더러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이웃이다. 그런데 서로 먹고 먹히는 사이, 뺏고 뺏기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시대가, 우리 사회가 현재 그렇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갑을관계라 하던가. 그렇다고 이웃 간의 인간관계마저 그럴 필요는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사용가치인 돈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세태를 우리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거부해야 한다. 세상이 온통 돈만으로 재단하는 무지막지한 상태이기에 사람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흐르는 강물 속 연어들처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몸을 강물의 흐름에 내맡기고 가만히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휩쓸려 가버릴 것이다. 휩쓸릴 때는 몸과 함께 마음도 휩쓸린다. 그러므로 삭막한 세상의 잣대를 거부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이런 자각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거래행위만 눈에 보인다. 자잘한 수고와 꼼꼼한 마음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사람이다.

현대는 자급자족 사회가 아니고, 의식주 어느 하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최첨단 분업 사회다. 농부나 노동자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막걸릿집 주인이 있어 편히 회포를 풀 수도 있고, 옷집 판매원이 있어 몸에 어울리는 옷을 고를 수 있으며,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 덕분에 늦은 밤 안심하고 잘 수 있다. 우리는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서로서로 생각해주지 않으면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든 이웃 사이다.

‘고양이, 쥐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생각난 것은 공자의 “不賢而內自省 (불현이 내자성 ; 어질지 않은 모습을 보면 눈을 돌려 자신을 살펴라)”이라는 말씀이었다. 나를 돌아본다. 예전에 항의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나중에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음식이 조금 늦는다고 배달 총각에게 눈살을 찌푸렸으며, 전화 통화도 안 하고 경비실에 놓고 간 택배 기사에게 큰소리를 내질렀다.

소소한 분노나 짜증을 내는 것이 바른 것, 아니 적어도 필요한 것일까? 시간이 지나고 이리저리 걷다 보니 달라졌다. 내가 낸 만큼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과 같은 값이면 남보다 나은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뿌리 깊게 내 속에 자리하고 있다. 경쟁지상주의 체제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어째 꺼림칙하다. 물론 노동 조건의 개선, 노동 문화의 성숙, 사회적 차별의 해소, 나아가 임노동 자체의 문제 등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우리 상호간의 직접적 대면자로서의 예의도 간과할 수 없다.

오늘을 내일처럼 살아내자.

자본주의의 부정은 미래에 이룰 꿈이 아니다. 지금 미래의 모습을 차곡차곡 쌓아서 다져야 이루고자 하는 미래가 된다. 지금의 구태적 관성을 부정하는 자잘한 실마리들이 차곡차곡 쌓여야 미래가 되는 것이다.

백화점 직원의 미소에 밝고 환한 얼굴로 응대해 보자. 으레 그러하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들의 인사를 받기만 하고 살지 않았나? 엘리베이터로 올라온 택배 기사의 초인종 소리가 나기 전에 현관문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선물 가져온 이웃처럼 얼른 문 열어주자. 한시라도 빨리 다음 선물 가져다주게.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미래가 오늘이었으면 참 좋겠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