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의 잃어버린 기억 -‘동남사진기공업사’

우리나라 최초의 카메라는 1952년에 만들어졌다. 그 카메라는 서울이 아니고 순천에서 만들어졌다. 

까만 보자기를 둘러쓰고 찰칵 하던 바로 그 사진기. 조립 정도가 아니라 전 제품 공정을 순천에서 했다. 필름을 넣어서 인화한 확대기, 절단기도 직접 만들었다. 안소니도 직접 만들었다. 현재 연자로 9에 위치한 랜드로바 자리가 바로 동남사진기공업사(이후 동남사)가 있던 곳이다. 

동남사는 불에 타 소실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진기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일제시대에 건물 1층에 남해당악기점과 사진기 재료상이 있었고, 2층에 아세아사진관이 있었다. 그 후에 사진기 제조업체 동남사로 발전했다. 먼 지방에서 카메라의 혁신을 연 것이다.
 

▲ 동남사에서 만든 사진기, 현재 순천만 도솔 갤러리에 전시돼 있다.

그 카메라에는 가방처럼 들고 이동을 할 수 있게 손잡이가 달려있었다. 나무로 만든 상자에는 보존성을 위해 황동 경첩을 붙이고 주름상자를 장착하였다. 최초를 만난다는 것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큰 신선함을 준다. 그러나 순천 사람 중에 한국 최초의 사진기 제조업체 ‘동남사진기공업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장인들

순천의 동남사진기공업사의 사진기는 전국에서 고도의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모여 만들었다. 목재카메라는 빛의 차단이 생명이므로 최상의 목재 재질과 정교함이 요구된다. 

목재는 질감을 그대로 살리고 뒤틀림이 없도록 밀도가 높은 벚나무를 사용하고, 잘게 절단하여 2년 이상 건조하고 가마솥에 찌고 또 건조시키는 가공 공정을 거쳤다. 

가공하기 어려운 사진 확대기의 시보리작업도 외주 가공을 주지 않고, 하나하나를 직접 제작하였다. 심지어 부품의 부식을 방지하는 니켈 도금까지도 직접 동남사 내 도금공장에서 했다. 
 

▲ 동남사 확대기는 순천시에서 매입하여 보관중이다.
 

또한 주물공장을 갖추고 황동, 알루미늄 부품의 주물 작업도 직접 하였으며, 선반공장에서는 나사못 하나, 경첩 하나까지도 녹이 나지 않는 황동으로 압착 작업을 했다. 작업 공정중 절단기 칼날의 약기작업(담금질 경화)은 가열시키는 화학공정으로 힘들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중간 공정의 목공장에서는 염색과 니스칠의 도포 작업은 네 번하여 제품은 무광으로 은은함이 있었고, 조립공장에서는 부품 하나하나를 검수하여 완전한 부품만으로 섬세한 공정을 걸친 완성품의 사진기가 탄생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한국산업박람회에 동남사 사진기를 출품하여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고 산업발달을 독려하기 위해 일본산 사진기의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덕분에 동남사도 확장되고 일주일에 몇 번은 야간작업까지 하면서 더욱 성업하게 되었다. 

한 때는 일본의 한 사진기제조업체에서 기술제휴를 하자는 제안이 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철우 사장은 “기술제휴를 하는 순간 자본과 기술 때문에 결국 동남사는 일본회사로 흡수돼 없어질 것” 이라며 제안을 거절했다.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김철우 사장

▲ ‘동남사진기공업사’초대 김철우 사장

동남사가 있던 자리에서 랜드로바를 운영하고 있는 김중식 사장이 기억하는 아버지 김철우 씨는(1978년 작고) 대범하고 집념이 대단했다. 

사진기를 분해해서 하나하나 원리를 이해하고 다시 조립을 해보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실패도 많이 했다. 사진관을 운영하다가 사진 재료상을 하면서 사진기 제작에 몰입해 드디어 사진기를 만들기 까지 실험은 끝이 없었다, 전국을 다니면서 그 기술을 배우고, 기술자들을 순천으로 데리고 오셨다. 

아버지는 사진기 관련 특허도 많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김철우 사장은 아이디어가 독특했다고 한다, 질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혀 외주를 주지 않았고, 뭔가 만들어야 하면 자료를 찾고 연구하여 기어이 만들어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동남사는 1976년 순식간에 불에 타 사라졌다. 잠을 자고 있는데, “불이야~”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깼더니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공장이 불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옷이고 뭐고 가지고 나올 사이도 없었다. 사진기와 사진 모든 것이 소실됐다.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불탄 건물은 다시 지었지만 공장을 재가동 할 수는 없었다. 김중식 사장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기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도솔갤러리 정일균 관장은 “비록 소실돼 없어진 공장이지만 옛날처럼 아세아사진관도 만들고, 사진기를 전시하는 곳이 있다면 사진기에 관한 관광테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시 초원사진관이 사진 하나로 관광에서 성공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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