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가키 에미코 / 김미형 옮김 / 엘리

저자는 일본 아사히신문에 종사했던 전직 언론인이다.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 잘했고, 착실히 취직준비를 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선망했던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 그녀는 기자 초보생활에서부터 점점 성장하여 좀 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고, 나중에는 사설을 쓰는 중책도 맡았으며, 퇴사 직전에는 어떤 현의 총국장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즉 신문기자로서 갖가지 역할과 직책을 고루 역임해본 언론인이라 하겠다. 자타가 인정한 중견 언론인으로서 그녀는 급여, 회사 내에서의 위치, 또한 사회적 역할 등은 상당히 고위급에 속했다. 즉 현대 일본사회에서 소위 성공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많은 것을 누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현실적으로 성공하고 잘 나가던 저자는 50세에 사표를 냈다. 이 책은 저자가 사표를 내기까지의 여러 가지 심리적, 상황적 계기와 과정을 순서대로 매우 쉽고 담담하게 묘사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일본사회가 본질적으로 ‘회사 사회’라고 규정하였고, 대부분이 취업해서 일생을 살아가는 회사 직장인의 입장과 처지를 묘사했으며, 자신은 왜 그곳에서 탈출했는가를 설명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회사사회’라는 일본 사회에 대한 부드러운 비판적 분석, 그리고 일생을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일본인의 삶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며, 나아가서 회사에서 퇴직함으로 얻게 되는 매우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소개라고 보면 되겠다.

이 책은 심각하고 심도 있는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서가 아니다. 저자는 무슨 깊은 사상이나 철학의 소유자는 아니고 (적어도 책의 표현을 그대로 믿는다면) 페미니스트, 생태주의자, 문명비평가, 심오한 종교적 구도자도 아니다.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게 주류의 일본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성공하고 누리며 살았던 보통 사람이다.

▲ 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 김미형 옮김 / 엘리


남달리 높은 보수를 받고 흥청망청 소비를 즐기던  그녀가 50세에 사표를 내던지고 ‘자유와 선택’의 신천지에 진입하는 모험을 감행했다는 것이 다소 의외라고 보겠다. 저자가 만일 정년까지 회사원으로 근무를 했다면 이런 책을 쓸 명분도 근거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다시 말하자면 “왜 나는 50세에 사표를 내게 되었는가?” 에 대한 답변서라 하겠다.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회사 사회’라 할 수 있는 일본사회에서 대다수의 직장인들의 삶과 심리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일본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결국 두 가지 요인 즉, 돈과 승진에 몰두하게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돈과 승진이 삶의 가치이고 의미이며 목적이다. 여타는 그냥 부수적인 것,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이 된다. 저자에 의하면 일본이 계속 경제성장을 하던 때에는 회사의 존재와 역할이 상당히 긍정적이었으며, 따라서 직장인의 삶도 그러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어렵게 상황이 변했다. 회사의 목적은 최대 이윤을 얻은 것이므로, 시대 상황이 달라져도 그 목적은 변함이 없다. 이윤을 내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경쟁하고 이윤을 얻으려면 회사는 결국 감원을 시키거나 다소 불법적인 일도 해야 한다. 즉 반사회적인 일도 하게 된다.  회사가 이런 처지에 처해있을 때에도 직장인은 그 회사에 충실히 복무해야 하므로 불가피하게 반사회적, 비인간적인 업무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삼성이 생각난다) 이 점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인 대다수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비인간적, 비윤리적인 일에 협력하게 된다. 무엇을 위해서?  돈과 승진을 위해서.

대다수 사람들은 왜 현재의 직장생활을 유지하는가? 사람들은 익숙하고 안정된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선택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삶은 선택인데, 그들은 현재의 삶을 그대로 사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모든 선택은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얻는 일이다. 현대 사회의 현실은 대다수 직장인들이, 자신의 직장생활이 의미 없고 심지어 다소간 반사회적인 성격이 있더라도, 그런 측면에 눈을 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먹고 살아야 하며, 가정을 유지하고 자식을 양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질적이고 중대한 사람의 책무다. 저자가 쉽게 사표를 낸 것은 독신이고 부양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8백만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수많은 사람이 실업자 내지 준 실업자 신세다. 이태백이란 말은 오래 전부터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많은 사람들에게 정규직은 하늘의 별처럼 선망의 대상이다. 일정한 수입과 생활의 안정이 보장된 정규직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직장생활의 부정적인 면을 거론하며, “당신의 자유와 새로운 삶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모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보수가 보장되고 안정되지만 무의미하고 구속적인 생활인가, 아니면 가난하고 불안하지만 자유롭고 모험적인 삶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인가? 전자도 싫고 후자도 어렵다면 어떤 길이 있는가? 즉 생활이 안정되면서 가치 있고 재미있는 삶이 가능한가?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부분 적으로 가능하다. 즉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기타 사회에 긍정적이고 기여하는 여러 분야의 직업과 직종이 상당히 있다. 그러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기회는 역시 좁은 것도 사실이다. 각 개인이 그러한 직장을 찾아서 종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바람직한 방법은 크게 구조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전 사회체제를 바꾸어(보편적인 복지국가가 떠오른다.) 국민 대다수가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해방되어 인간적이고 보람차고 가치있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의식주와 의료 교육은 인간생활의 기본이다. 이 기본을 사회적으로 해결해버리자는 것이다.

직장생활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직장인 대다수가 블랙홀처럼 일에 몰입되어 버린다는 데 있다. 저자가 직장생활은 결국 돈과 승진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그런데 돈과 승진은 삶의 한 방편이지 인생의 숭고한 목적이나 추구할 가치가 아니다. 인간이 이 지구라는 행성에 탄생한 목적은 직장생활에 몰입해서 거기서 허우적거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먹고 살기위해서 자신의 온갖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부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탈진해서 다른 여타의 것에 관심과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은 잘못된 사회다. 이것은 결코 인간이란 존귀한 존재가 살아야할 삶의 양식이 아니다. 직업과 일은 삶의 일부분일 뿐 전체가 아니다. 그가 어떤 회사의 신입사원이건 부장이건 임원 아니면 사장이건 상관없이, 직장생활은 생계수단을 벌고 사회적 역할을 하는 기본적인 부분이다. 직업에 종사하는 것은 삶의 아주 적은 부분일 뿐이다.

모든 직업은 부업이다! 별 쓸모없지만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시시한 일이라는 뜻이다. 돈벌기 위한 모든 일은 변소 가는 것과 같다. 먹고 살아야 하니 변소에 안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용변 보는 일이 무슨 대단하고 의미와 가치 있는 일인가? 그런데 직장 일에 올인 한다는 것은 결국 용변 보는 일에 몰입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용번 보는 일에 몰입하도록 세뇌되고 중독되어 있다. 직장에 올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악마가 설계한 사회라 할 것이다.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존귀한 존재다. 인간은 불멸의 영혼이며, 잠시 3차원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 이 지구를  방문한 존재다. 지구에서의 온갖 경험과 삶의 과정은 인간 자신뿐만 아니라 이 우주에 필요한 과업일 것이다. 지구인 중 누구도 인간 존재의 그 심원하고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를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인간존재는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무엇이다.

진정으로 속상한 것은 인간이 평가절하된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본래 왕자와 공주로 태어났다. 그런데 어떤 흑마술사의 주문에 걸려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거지 신세로 살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본래 왕자(공주) 인 것을 까마득히 잊은 채 거지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착각과 미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자신의 고귀하고 성스러운 본성을 기억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사회를 만들고 새 삶을 살아야 한다.

인간의 존엄에 어울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루 속히 “모든 직업은 부업이고 시시하다”는 것이 전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무더운 여름철에 곳곳에서 땀흘려 일하는 많은 분들의 노동과 작업을 폄하하려는 뜻은 추호도 없음을 밝힙니다!) 직장 근무는 일주에 2일 정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시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온갖 취미생활도 하고, 양자역학과 천체 물리학이 보여주는 광대무변의 우주도 탐구해보면 좋을 것이다. 다양하게 놀고 여행하고 친구들과 사귀는 삶이 펼쳐져야 한다. 인공지능, 3D프린터, 로봇 등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올바르게 실현하면 그러한 세상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물론 대세는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