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평화나비와 함께 하는 평화기행문

저번 주에 한참 게임하고 있을 때 엄마가 평화 기행을 서울로 가자고 하셔서 별다른 생각 없이 간다고 했다.

처음으로 간 장소는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었다. 엄마랑 이어폰을 끼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과 역사를 보고 느꼈다.

어린 소녀들을 취직시켜 준다고 속여 끌고 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이용했다. 지금 살아 계신 할머니들은 운이 좋아 겨우 살아 남으셨는데 일본 정부는 계속 모른다고 하고 있다. 할머니들께서 연세가 많으셔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빨리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께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느꼈다.

다음으로는 서대문 형무소에 갔는데 그곳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애써 오신 분들을 기리고 알려주는 곳이었다.

우연히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증손자를 만났다. 그분은 할아버지 덕분에 자기가 문제없이 살아왔다고 하셨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살고 있으며 교수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신 분 들 중에 대표적인 안창호 선생님의 증손자를 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잡혀 온 분들이 찼던 족쇄, 수갑을 봤는데 5kg 무게의 쇠를 발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물고문등 손톱 찌르기와 같은 사람에게 못할 짓을 했던 것을 알았다. 내가 이렇게 편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 덕분이다. 만약 내가 여길 안 왔다면 그것도 모른 채 살아갔을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위안부기림일 행사에 참여했는데 거기엔 이미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우비를 입고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뒤에서 행사를 지켜보았는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 두 분이 있었고 한 분이 무대 위로 올라가 노래 한가락을 부르고 데뷔를 하셨다.

이 할머니가 어릴 때 아픈 시절을 노래를 부르며 이겨 나갔고 무대에 데뷔까지 하시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고 할머니가 멋있어 보였다. 그분은 길원옥 할머니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보지 못하고 숙소로 갔다.      

가는 도중에도 피곤해 한숨 잤더니 숙소였다. 방 배정을 받고 가보니 17명이서 같이 자야 한다는 말을 듣고 괜히 왔나 싶었다. 잠시 후 다른 방은 조금 넓다고 남자 대부분이 그 방으로 갔다. 충전기는 못 꽂았지만 이전 방보다 훨씬 좋았다. 

다음날, 아침에 씻고 밥을 먹고 임진각평화누리공원으로 갔다. 하필 그날 비와 바람이 거세게 와서 내 신발에 물이 들어가 양말이 전부 젖었다. 임진각은 북한이 보일 정도로 엄청 위쪽(북쪽)에 있는 장소이다. 이곳에 열차길이 있었는데 개경까지 22km이고 서울까지 56k의 거리라고 했다. 이만큼 북한과 엄청 가까운 곳이다. 우리가 통일이 되면 이곳에서 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갈 수 있는데 이 점도 아쉬웠다.

바로 오두산 통일 전망대로 갔다. 여기가 임진각보다 북한 땅과 더 가까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가 많이 와서 북한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래층에 이산가족이 그린 그림이 있었다. 대부분 자기 고향을 그렸다. 이분들은 전쟁 때 헤어진 가족들을 통일이 되어 하루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이런 그림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요즘 북한이 핵에 대해 말이 많은데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를 잘 해서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면 좋겠다.

점심을 지하 뷔페에서 먹고 평화통일 행사에 참가한다고 해서 뭔지 궁금했었다. 비가 심해서 우비를 챙겨 입고 앞에서 이끄는 순천평화나비 깃발을 따라 서울시청 앞으로 갔다. 계단이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우비를 입고 빽빽이 앉아서 집회를 하는 것을 보았다.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해서 매우 아쉬웠다.

집회를 진행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굉장히 강하고 웅장해서 매우 놀라웠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모여 문제에 대해 같이 말하는 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다음에는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으로 갔다. 가 보았더니 비닐을 덮은 이상한 것(?)이 있었고 그 앞에 소녀상, 뒤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배상,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소규모 집회를 하고 있었다.

집회 뒤에서 듣다가 비닐을 덮은 이상한 것이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그곳에서 약 600일 정도를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집에 오고 가며 지냈겠지만 힘들 것 같았다. 거기서 형이 나와서 짜장면을 시켜 다른 분들과 먹는 걸 보았는데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평화나비 팜플랫을 들고 선언을 하고 사진을 찍고 버스로 돌아갔다.
 

▲ '평화의 소녀상' 과 함께. 왼쪽에서 두번째가 최현서 학생


하루 종일 발이 젖어 너무 기분이 별로였다. 버스에서 맨발로 순천으로 돌아왔다. 밥을 먹을 사람은 먹고 가라 했는데 빨리 집에가서 발을 어떻게 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민숙선생님이 밥 먹고 가자고 하셨는데 너무 힘들어서 먼저 와버렸다.

차에서 엄마한테 들었는데 이런 행사에 왔으면 같이 밥도 먹으면서 마지막 인사도 하고 가는 거라고 했다. 집에 오고나니 너무 죄송해서 어쩔 줄 몰랐다. 앞으로는 마지막까지 잘 좀 해야겠다.

최현서(여천중학교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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