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밍보이즈를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1월 태국. 친구들과 함께 떠난 생태공동체여행에서였다. 카오산 로드에서 각자 자유 시간을 즐긴 후 숙소에 돌아왔는데 숙소 앞에 웬 청년 셋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딱 봐도 한국인, 누가 봐도 돈 없는 배낭여행객의 몰골로 캠코더를 들고 있는 것이 재미있어서 쳐다봤는데 보파(내가 참여한 공동체여행의 주최자. 닉네임을 씀)가 “얘들은 비상식량이야”라며 소개를 해줬다.

비상식량 팀은 지황, 하석, 두현 세 명의 청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농업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돌아올 비행기 값도 없이 무작정 호주로 가서 농사를 배우겠다며 온갖 농장을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실패, 결국 3잡을 뛰며 여행경비를 마련했고, 구글 검색과 페이스북을 통해 농장들을 추천받아 여행하던 중이었다. 보파와도 페이스북으로 연결되어 그들이 여행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우리를 만나 보름정도 함께 여행했었다.
 

 


세계 일주는 그 무렵 청년들에게 한 번 쯤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온갖 해외여행에 대한 책과 강연이 쏟아지던 때였는데(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들의 여행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농업’이라는 주제와 그것을 대하는 고민의 깊이 그리고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태도 때문이었다.

특히 팀명에서 잘 드러났는데, 비상식량이라는 팀명에는 ‘농사가 세계를 구한다’는 그들만의 철학이 담겨있었다. 무수히 많이 버려지는 음식들과 굶는 아이들.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농업 때문에 먹을거리에 대한 주권을 잃어가는 사람들. 또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개인을 기르는 사회 속에서 걱정 마 우리가 있어! 하고 위로를 해주는 ‘비상식량’이 되겠다는 세 청년들의 눈빛이 너무나 멋졌다.

 
 


그들의 세계 일주는 2015년 8월까지 이어졌다. 영상 편집과 나레이션 작업 등을 거쳐 2016년에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부산 국제영화제에 화제작으로 상영되기도 하고, mbc 다큐 스페셜에 방영되어 나도 괜히 뿌듯했었다. 하지만 지황은 대중적인 이해를 위한 파밍보이즈라는 이름과, 지루하지 않은 다큐를 만들려다 보니 재미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것을 못내 아쉬워했었다.

그러다 2017년 7월. 여행 후 2년여 만에 정식 다큐영화로 제작되어 전국 영화관에서 개봉했다. 개봉 전 농부의 시장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는데 갑자기 비가 와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왔다고 했다. 서울이 멀기도 했고, 일 때문에도 못가서 미안하다는 통화에서 지황이 “성혜야, 이번 편집 본에서는 우리가 고민했던 여행의 의미가 좀 더 담겼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왠지 더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느 독립다큐처럼 상영관을 잡는 게 쉽지 않았는지 전남권에선 상영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여행기를 담은 책이 출간되어 그나마 가까운 통영에서 출판기념 시사회를 하기에 다녀왔다. 영화상영이 끝난 후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왔다. 이들의 무모한 도전이 꽤 근사하게 마무리 된 것을 보고나니 괜히 무엇인가 시도하고 싶어졌다.
 

▲ 통영시사회 후 함께~


이런 마음을 순천의 청년들에게 그리고 청춘의 기억을 가진 지역 어른들에게도 나누고 싶어 순천에서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식구들과 공동체상영을 추진했다. 마침 소공자 마을학교라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해가는 대안문화를 소개하는 순천시민협력센터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파밍보이즈를 초청하고 영화 상영을 하게 됐다. 농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좋다. 꿈을 찾는 그들의 여정이 분명 어떤 충만함을 선사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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