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황우
순천제일대학교 교수 / 공학박사

선거 때만 되면 순천지역에 이슈가 되는 공약이 있다. 지역발전을 위한 농어촌 및 원도심 활성화 정책, 경제 활성화를 위한 산단 활성화 및 일자리 정책, 그리고 문화, 예술, 관광, 환경, 복지, 의료, 교통, 교육, 청소년, 체육 등의 분야별 개선 및 발전 정책, 거기에 3개시 도시통합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공약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의대 유치 공약은 순천대학교에서 1996년 의과대학 및 한의과대학 설립 타당성 연구를 시작한 이래 지난 20여 년간 진행되었고, 2012년 12월 의과대학 설립추진위원회의 발족과 더불어 의대 유치를 기원하는 ‘77만명 서명운동’을 추진하면서 지역의 숙원사업과 정치 공약으로 부상하였다. 따라서 내년에도 지방선거가 있으니 실현 가능성을 넘어 분명히 의대유치나 추진을 공약으로 내거는 정치인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순천대가 의과대학 유치를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전국에는 41개의 의과대학이 있지만 전남은 전국 16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지역이라는 점, 

둘째로 전남은 65세 이상 인구비율(2012년)이 전국 최고인 19%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등 노인 의료서비스 수요가 급증하는 지역이라는 점, 

셋째는 광양만권에는 국가기간산업시설이 밀집해 있고 지역적 여건상 산업재해가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즉,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광양만권에 들어서면 이 같은 대형사고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 지금처럼 종합의료기관 부재로 응급환자들이 광주광역시나 수도권 병원까지 이동하는 데 따른 불편과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순천대의 의과대학 유치는 나름의 타당한 논거가 있다. 

그렇다면 복지부나 교육부에서 순천대 의대 유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 컨데 현재 순천대를 제외한 목포대, 창원대, 인천대, 서울시립대 등 전국에서 6개 대학이 의대 유치를 추진하고 있고, 대한의사협회 등에서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강력히 의사수급 확대 정책에 반대하거나 아니면 광주권에 대학병원이 2개나 있어서 1시간 내외로 환자이송이 가능한데 굳이 순천에 의대를 유치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부정적 논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순천대 의대는 이러한 난관을 뚫고 과연 유치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실현 가능성보다 지역민들이 원하니 표를 의식해서 선거 때만 되면 의대유치 추진이니 본인이 유치를 성사시킬 적임자니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막연하고 성사도 불투명한 의대유치 말고 다른 대안은 없을까?

이제 시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의료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차례인 듯싶다. 지역민의 불만 중에 하나가 우리 지역엔 믿을 만한 대학 병원급이나 서울의 4대 메이저급 병원이 없다는 것이다. 

본 필자는 지역에서 의대유치가 한참 뜨거웠던 몇년 전 ‘의대유치를 바라는 시민사회 100인 모임’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첫째는 순천대 당국자가 복지부를 방문하여 순천대 의대설립을 요청했을 때, 순천에 의대는 안 되지만 좋은 병원은 지어줄 수 있다는 복지부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순천대 당국자가 의대가 아니면 다른 건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천대의 이기심에 놀랐다. 

둘째는 위중한 병세에는 전남동부권 시민들이 지역의 병원에서 해결을 못하거나 불신해서 수도권이나 광주권으로 전원하는 비율이 45%에 육박한다는 사례발표에 또 한 번 놀랐다. 환자나 시민은 치료나 생명을 다루는 수준 높은 병원이 우선 필요하다. 따라서 시민이 일차적으로 원하는 것은 수준 높은 양질의 병원이지 병원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의사 수급 문제는 그 다음 문제인 것이다.

좋은 병원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느냐 없느냐, 서비스의 질이 좋냐 나쁘냐는 주민들 피부에 와 닿는 중요 민생 현안인데도 지역의 정치인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로지 실현 가능성 적은 의대유치나 언어적 수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병원 관련 인력, 자본, 시설의 서울집중 현상이 강화되어 왔다. 이처럼 지역 의료의 수준을 결정하는 지자체의 영향력이 미미하다 보니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노력은 자연히 중앙정부로 향할 수밖에 없다. 국립대 의대 신설 요구가 대표적 사례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의료제도를 접할 때마다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 중의 하나는 의료시스템의 기획, 투자, 지원, 관리에 있어서 지방정부의 역할과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난 공학도라서 그런지 일을 보면 우선순위와 실현 가능성, 효율성, 논리성, 합리성 등의 판단을 매우 중요시 하는 편이다. 순천대에 의대가 유치되길 바란다. 하지만 의대 유치가 안 된다고 좋은 병원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 이제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생명을 다루는 의료서비스 만큼은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고품질의 병원 유치에 지역의 시민, 지자체, 정치인 등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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