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 글은 ‘사랑어린학교’ 8학년 아이들이 관옥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시간에 나눈 이야기를 채록하여 부분 정리한 것입니다.



 한 번에 한 걸음


자기가 뭘 하면서 자기가 그걸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 하는거야, 안하는거야? 왜 내가 뭘 하면서 자기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까? 할아버지가 한번 이야기 들려줬지?

어떤 사람이 칠면조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토론하다 보니까 칠면조고기가 다 없어졌는데 자기가 칠면조고기를 먹은 걸 몰랐더라는 이야기 말이야. 기억 안나? 잘 들어 봐. 할아버지 얘기할 때는 할아버지를 보고 눈을 맞추어달라고 했지? 나를 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야. 우리나라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 군인들이 와서 전쟁했잖아? 그때 미국의 어느 장교 한명이 있었어. 전쟁터라는건 언제 죽을지 몰라. 그지?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거야. 살벌한 전쟁터에서 추수감사절이 됐어. 근데 미국사람들의 추수감사절은 우리들의 추석이나 비슷해. 크리스마스하고 추수감사절이 미국에선 제일 큰 명절이야. 추수감사절엔 전통적으로 칠면조요리를 해서 먹어. 그게 풍습이야. 칠면조고기는 닭고기하고 달라서 아무 때나 먹는 고기가 아니야. 등치도 아주 크고 명절때나 먹는거야.

그 해의 추수감사절이 됐어. 그러니까 대대장이 자기 집에서 추수감사절 파티를 열면서 장교를 다 초대한거야. 부하들을. 이 글을 쓴 주인공도 초대를 받아 파티에 간거야. 살벌한 전쟁통에서 굉장히 기대가 많잖아. 더군다나 못먹어보던 칠면조고기를 먹게 됐단 말이야. 갔어. 가니까 좍 식탁이 차려져있단 말이야. 이제 앉아서 와인도 한잔 하면서 얘기가 시작이 됐어.

어쩌다보니까 대대장하고 자기하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서로 의견이 안맞는거야. 생각이 다른거야. 그러다보니 서로 내 생각이 옳다, 네 생각이 잘못됐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기 시작한거야. 그럼 이게 토론이 되는거야. 

토론해봤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서로 자기 얘기를 하는데 이게 잘 되면 훌륭한 토론이 되는데 이게 잘못되면 뭐가 되는지 아니? 토론이 잘못되면 뭐로 바뀌어? 그걸 말싸움이라고 해. 한문으로는 論爭(논쟁)이라고 해. 논쟁이란 말 들어봤니? 논쟁. 쟁은 전쟁할때 爭(쟁)이야. 말로 싸우는거야. 

토론은 싸우자고 하는게 아니라 생각을 모으자고 하는거지? 그지? 서로 어떤 생각이 어떤지를 알아보고 그러고 나서 결론을 내는거지. 그게 토론하는거라면 그게 잘못되면 논쟁이 되는거야. 그럼 싸워. 싸우면 어떻게 돼?

싸우면 이겨야 되는거지? 지려고 싸우는 사람 있냐? 그러다보면 이겨야 되니까 상대방이 뭐가 되냐? 적이 되는거지. 싸움은 적이 없으면 안돼. 적이 있어야 싸움이 되는거지. 때로는 친한 친구도 적이 되는거야. 그래서 논쟁을 하다 보니까 칠면조고기가 다 없어진거야. 상에 있던 칠면조고기가 논쟁을 거의 마치고 힘이 들어서 보니까 칠면조 고기가 안보여. 어디로 갔을까? 상상해봐. 무슨일이 벌어진거야? 칠면조고기가 날개 달고 날아갔나? 어떻게 된거야? 분명 여기 있었는데 안보여. 어디로 갔을까? (자기가 먹었어요) 그렇지. 먹었어. 먹었는데 토론하는데 마음이 다 가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칠면조고기를 먹은 걸 모르는거야. 칠면조고기를 먹긴 먹었지만 안먹은거나 마찬가지야. 자기가 칠면조 먹은 생각이 안나. 내가 뭘 하면서 뭘 하는지 모르는 것, 그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어. 마음이 딴데 가있는거야. 그러면 공부 아무리 해도 소용없지? 그지? 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마음이 딴데 가 있으면 내가 책을 읽은거야, 안읽은거야? 읽었지만 안읽은거야. 먹었지만 안먹은거야.

그래서 뭘 해도 한 번에 한 걸음밖에 못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한 번에 두 숟가락을 못먹어. 걸음도 한 걸음씩밖에 못가.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거야. 한 번에 한 숟가락밖에 못먹어. 그래서 뭘 해도 좋으니까 마음을 딴데로 보내지 마라, 이런 얘기야. 알았지? 내가 하는 일에, 그 일에 온전히 집중해. 그럼 10분만 해도 훨씬 효과가 있는거야.

공부는 그렇게 하는거야. 오랜 시간 책 붙들고 있다고 좋은 줄 아니? 단 10분을 하더라도 거기에 집중하는거야. 이거 훈련해야 돼. 지금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헛산단 말이야. 헛살아. 실컷 뭘 했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뭘 해도 좋으니까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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