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쓰기

나는 상사면에 산다. 주로 아침에 64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온다. 가끔 버스에서 장에 물건을 팔러 나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는데, 나는 그때마다 그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그동안은 부끄러워서 말을 못 꺼냈다.

오늘은 버스에 타자 노란 박스에 담겨 있는 복숭아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는 복숭아를 몇 개 꺼내서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건낸다. 오늘은 지유에게 복숭아를 사 주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본다.

“할머니, 이 복숭아 약 많이 안 쳤지요?”
“쬐끔만 쳤어”
“얼마나 살까요? 적당히 주세요”
“마수니까 만 원 어치만 사줘잉”
“만 원 어치 주세요”
 

 


할머니는 좋은 것만 주려고 복숭아를 고르고 골라서 까만 비닐 봉지에 주섬주섬 담는다.

“보통 만원에 일곱여덟게 정도 주는데 겁나 많이 준겨”

내가 복숭아를 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만원어치씩 산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농을 던지신다.

“장에 안 가고 버스 끝까지 가믄 다 팔아뿔것네. 기사 양반한테 복숭아 쪼까 주고 버스에서 파쇼”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할머니는 내 앞자리에 앉아서 뒤늦게 그 복숭아를 팔러 나가게 된
‘내력’을 풀어 놓으신다.

“이 복숭아는 약을 두 번 밖에 안 쳤는디, 4월에 친 것이 마지막이여. 원래 아들네를 주려고 했는디 아들네가 안 온다고 해서 팔러 나가는 것여”

“아랫장이나 웃장에 팔러 나가면 사람들이 이 복숭아는 안 사. 모양도 안 이삐고, 벌레도 묵고, 맨날 중앙시장에만 가. 거기서는 내꺼만 사먹을라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

이야기 도중에, 할머니는 다시 노란 박스에서 복숭아 세 알을 꺼내면서 마지막으로 산 사람에게 더 건낸다.

“마지막에 산 양반이 좋은 게 안 들어가서. 미안해서. 조금 더 줬어”
 

 

집에 가서 비닐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벌레가 많이 먹어 있었고, 맨 아래에 있는 복숭아의 경우에는 절반 이상이 썩어 있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만약 마트에서 이런 물건을 샀다면 불쾌했을텐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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